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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 Review

예상의 변증법 - 논어 제4편 이인(里人)을 읽고

zeno 2008. 9. 5. 21:43

  주희의 해석을 따르자면 공자의 『논어』 제4편 이인(里人)편은 ‘인덕(仁德)이 있는 곳’을 다루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제4편 1은 ‘인덕(仁德)이 있는 곳’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이후 26까지의 문장들은 그 곳에 사는 한 현명한 노인(공자)이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들처럼 보인다.
  텍스트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역시 현대 한국인들이 보통 유가에 갖고 있는 선입견 중 하나인 ‘도덕주의Moralism’로부터 크게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공자는 일관성 있게 인(仁)과 도(道)를 강조하고 있다.[각주:1] 8에서 등장하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문장은 필자 같은 일반 독자가 유가철학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문장 중 하나로써 기대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모든 텍스트가 본래의 선입견대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황희경의 해석에 따르면 2에서 지(知)는 “작은 도리나 처세에 밝은 것”, “처세의 도”에 불과하기에 인(仁)과 대비되거나 인(仁)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가치다.[각주:2] 흔히 일반인들은 유가철학에서 인(仁)만큼이나 지(知) 역시 중시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해석에 따르자면 지(知)는 무조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지향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필자의 생각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고대 철학을 판단하다가 범하는 우인 듯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의(義) 역시 10에서 나타나는 공자의 말이나 황희경의 해석을 살펴봤을 때 일종의 상대주의적 가치에 가깝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그저 “해야 할 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각주:3] 이런 생각 역시 의(義)는 곧 정의(正義)이고, 반드시 지향해야 할 절대적 가치라는 ‘근대’적 관념에 익숙한 필자로썬 조금 당황스럽게 여겨진다. 의(義)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에 불과하단 것인가?
  마지막으로, 텍스트 전반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명한 고전, 플라톤의 『국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편이 영어로 Book으로 번역되고, 텍스트가 구술문의 방식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플라톤의 저작과 공통적이라 고전(古典)은 그런 점에서 통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플라톤의 저작과는 달리 각 문장이 서로 독립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일견 상충되거나 다른 방향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 역시 특이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는 예상대로, 또 어느 정도는 예상을 벗어나며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논어』 전 편을 보아야 전체적인 맥락Context이 이해될 것 같다.

  1. 황희경의 해석에 따르면, 인은 “큰 도리”, “사랑”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仁이라는 한자의 본래 의미인 ‘어짊’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편, 도는 “개인과 천하의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과 이상”을 의미한다. 즉, 각각의 개념은 개인의 도덕성에 기반하여 개인적으로는 어질면서 사회적으로는 원대한 꿈을 갖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황희경 옮김, 『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논어』, (시공사, 2000) 77 ~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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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황희경 옮김, 같은 책, 77쪽. [본문으로]
  3. 황희경 옮김, 같은 책, 81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