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설] 마이 짝퉁 라이프 <★★☆> 본문
마이 짝퉁 라이프 - ![]() 고예나 지음/민음사 |
pp. 101 - 103
"유치하게 뭐하는 짓이냐?"
"원래 사랑은 유치한 거야."
"놀구 있네."
R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지금 내 심정은 상당히 미묘하다. 나는 열등생처럼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어 든다.
사랑이란 상품은 돌고 돌아야 하는데 늘 구매하는 사람만 구매한다. 나는 사랑을 쟁취하는 자들에게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R의 미니 홈피에 가면 남자 친구가 이벤트를 해 준 사진이 올라와 있다. 화살표를 땅에 붙여서 길을 인도하고 마지막에 도착한 목적지엔 하트 모양으로 세워 놓은 양초들에 불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촛불 가운데엔 남자 친구가 장미꽃 다발을 들고 서 있다. 사진은 분명 보라고 있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것들은 올리지 않는다.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귀어도 그런 이벤트를 해 줄 것이다. 자기만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R 역시 다른 남자를 만나도 그런 이벤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R은 그런 이벤트를 늘 받아 왔으므로 다른 남자를 선택할 때도 그런 이벤트를 해 줄 만한 남자를 골라서 사귈 것이기 때문이다.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그렇다. 엇갈리는 사람은 엇갈리기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기만 하고, 아픈 사람은 아프기만 한다. 재화만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배급받지 못한 나는 내 사랑을 앗아 간 것처럼 사랑하고 있는 자들을 시기한다.
나도 한때는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안 하는 것만 못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그토록 쏟아 부었던 에너지는 지금쯤 어디로 갔을가. 아직도 지구 어디에선가 내 사랑은 무중력 상태로 떠 있으리라.
pp. 158 - 159요 근래 읽은 책 치고 오랜만에 별 두개반을 주었다. 이상하게 요즘 읽는 한국 20대 작가들의 소설은 연애 & 섹스가 키워드의 전부다. '88만원 세대'가 그러한 것인가? 이제 식상하다. 이건 뭐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냥 '사랑'이란 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여튼 얇아서 금방 읽을만하긴 하다.
생각하건대 나는 조선 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태어나 버렸다. 나는 요즘 같은 자유연애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는 연애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애라는 것을 하지 못한 채 결혼을 했다. 당연히 설렘이란 감정을 알았을 리 없다. 그들은 남자의 얼굴도 시집가는 날 알았다. 그 시대에는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이성이 아니라 어른들이 짝 지어 주는 사람과 결혼했다. 자기 의지로 고른 사람이 아닌데도 이혼하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 시대에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이유는 결혼도 연애처럼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 줄곧 연애를 해 왔듯이 또 연애하면 될 일이다. 여자의 기가 세졌기 때문에 이혼율이 증가했다는 이유는 빈약하다. 결혼이든 이혼이든 고장난명(孤掌難鳴)인 것이다.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 한쪽만이 아닌 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연애를 너무 많이 해 봤기 때문에 결혼도 몇 번 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연애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한 번쯤은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나 짚어 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연애가 없는 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다. 모두 연애를 하지 않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보다는 훨신 행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