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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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각성

zeno 2006. 10. 27. 00:56
  시험 기간에 생각했던 일을 실천에 옮긴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6월 23일 유럽으로 떠나기까지 매일 싸이 다이어리에 되도 않는 주제라도 하나씩 제목 삼아 정해놓고 글 쓰는 연습을 했었다. 여행을 다니다보니 흐름이 끊기고, 싸이에서 블로그로 옮기게 되면서 매일 쓰던 것을 그만 두고 부정기적으로 바꾸었는데 그만둔지 4개월 가량만에 시험 공부 하면서 내 작문 능력이 이전보다도 더 퇴화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속이 몹시 상했다. 그래서 '시험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매일 글 하나씩 쓰던 습관을 되찾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실천에 옮기려 한다. 이 글은 그 시작.
  사실 그보다 큰 각성을 했다. 오늘 학교에서 열린 '관악초청강좌 23 - 황동규 시인 -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를 들었는데 지금까지 학교에서 열린 강좌 중 들었던 것 중에서 지난 봄에 조정래 씨 것을 들었던 것보다도 좋았다. 여느 유명인의 강좌처럼 자신의 자랑에만 그치거나, 수박 겉핥기 식의 시간 보내기가 아닌 나름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황동규 선생님께서 (나름 배움을 주셨기에 고맙다고 생각해서 선생님이란 표현을 쓴다.) 본인이 문학을 하는 이유는 요약하자면 '삶의 진실'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어찌보면 식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이 말은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적부터 '문학소년'을 자처하였지만 막상 제대로 쓰지는 못하고 읽기만을 즐겼던 내게 다시 습작을 시작해야겠다는 각성을 불러 왔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제일의 문학은 아무래도 소설이다. 지금도 소설을 하루라도, 혹은 잠시라도 읽지 못하면 사는게 재미가 없고 답답하며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진단하건대, 나는 '소설중독'이다. 내가 쓰는 닉네임 zenovelist의 novelist는 소설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도 난 소설을 쓰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아직 그 생각을 갖고는 잊지만 실천에 제대로 옮기고 있지는 못하다. 읽는 건 가능한 한 지속하고 있지만 (주로 한국 대하소설과 현대 한국소설을 즐겨 읽는다. 번역은 아무래도 원작만 못한 것 같고, 고전은 아직 감당하기에는 내 내공이 부족하다 생각되어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쓰는 건 거의 못 하는 실정이다. 여행 다니면서 구상해 놓은 것을 여러 개 아직도 노트에 플롯이 짜여져 있지만 구체적 구조를 설정하지 못해 쓰지는 못하고 있다. 내게 소설 쓰기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갈등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재능인지, 자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를 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다만 그 내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갈등을 잘 못 짜겠다. 그게 내 현재 한계다. 그걸 넘어보려고 몇 년째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그걸 제대로 넘지 못해 스토리만 이것저것 짜고 막상 쓰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 작법' 책을 공부하거나 학교 국문과 수업을 들으려고 생각 중이다. 이에 대한 열정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오늘 강좌는 내 결심을 다시 상기하게 해주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 국문과 진학을 심각히 고려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비겁하게 사회과학으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버린 적은 맹세컨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못 쓰고 있던 것을 다시금 쓰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때마침 들려온 학준이 형의 단편 당선 소식 역시 내게 자극이 되었다. 사실 내 꿈 중 하나는 서른이 되기전에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어 등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능한 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발버둥 치는거고. 아직 11년, 혹은 10년 남았다. 그 초석으로 삼기 위해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이 11월 10일 마감인 대학문학상이다. (사실 학교 대학신문사 주최라 '상'자까지 붙이는 지는 잘 모르겠다.)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단편이라도 하나 써야겠다.
  그 다음은 시이다. 사실 내게 있어 시는 굉장히 애매한 대상이다. 마음 먹으면 3분이면 '생산 '해내는 나이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봐도 '시'라기 보다는 억지로 운율을 붙이고 행과 연을 나눈 '감정의 배설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잘 쓰지 않는다. '형상화'를 못하기 때문이다. 시는 '작법' 공부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항상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다. 마음먹으면 소설보다는 쉽게 쓸 수 있지만, 그만큼 '시'라고 자처하기에는 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강좌를 들으면서 시도 계속 쓰는 것이 어떠할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대학문학상 원고를 시로 낼까도 생각하게 되었다. 제목까지 정해두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익히 알려진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서 따온 제목이다. 혹자는 추측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는 - 쓰여진다면 - 내게 예술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해 준 JK에게 헌정 - 너무 거창하다 생각되면 바쳐질로 읽어도 좋다 - 될 것이다. JK를 시적 화자로 설정해서 쓸 것이기에.
  사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에 수필과 희곡은 쉬이 포함되지 않는다. 수필이야 내가 늘 쓰는 글의 대부분이 해당되고, 희곡은 시처럼 마음만 먹으면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내게 창작의 즐거움과 감상의 즐거움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나는 피천득, 장영희, 장정일 등의 수필과 - 지금으로선 당장 떠오르는게 그들이다 - 이강백의 희곡을 좋아한다.
  사실 각성한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다른 각성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 생각한 것인데,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철학' 공부를 뜻한다. 요즘 하는 생각인데 얼치기 논술 공부를 하던 작년 이 맘때보다도 내 지적 수준은 퇴화한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두렵고 자신이 없다. 그래서 계속 움츠러들고 침전한다. 그런데 이렇게 도망만 치다가는 아무런 발전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바탕이자 시작이 될 것이 철학인 것 같다. 어렵지만, 불명료한 사고를 명료화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철학이다, 적어도 내게는. 굳이 서양철학이 동양철학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서양철학부터 시작하고 싶다. 마침 내가 철학학회 소속이기도 하고. 05 형들이랑 있을 때 열등감을 많이 느낀다. 나이는 두 살 남짓 차이, 학번은 하나 차이일뿐인데 나는 자신이 없어 선뜻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은 나름의 독서를 바탕으로 거침없이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1학기 2학기 중반이 지나가는 시점에 이런 생각을 한게 늦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난 대학 생활을 되돌아보면 사실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2학기 나머지 시간 동안에도 제대로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2학기 동안에는 슬슬 바람만 불어놓고 겨울에 마음 먹고 해 볼 생각이다. 어차피 장기 치료 받게 되면 바깥 출입이 힘들어질 것 같기에 그 때 시간적 여유를 갖고 책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만나는 형들에게 게걸스럽게 '생일 선물'을 빙자하여 책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 이미 사 놓고 안 본 책들이 수백권에 달할 정도로 쌓여 있지만 철학 공부를 시작하기에 적절한 것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철학 공부를 한다고 해서 당장 졸업하고 밥 벌어먹고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왕 공부를 좀 길게 - 어쩌면 평생 - 하려고 마음 먹은 이상 지극히 당연하게도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생각은 사학이다. 역시 역사는 순환하는 것 같다. 겉모습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별 차이 없어 보이는 일들이 너무나도 자주, 또 여러 번 다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학의 존재의의가 있는 것 같다. 지금 현재 관심 두고 있는 것은 한홍구 씨가 쓴 대한민국사를 읽는 것.
  결론은 '공부'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해야 할 공부가 너무나도 많다. 물론 허섭쓰레기 같은 학과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빡세게 사는 것은 힘들어 한다. 그래서 조금 부드러운 책들도 읽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내 삶의 활력소이자 오아시스이다.
  글이 길기만 하고 두서가 없어 가독성이 좋지 않다. 쓰면서 느꼈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길게 쓰는데 논리적으로 쓰려하다가는 글이 짧아지고 쓰기 힘들 것 같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줄줄이 나열했다. 계속 작문 연습을 하면서 이 역시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항상 논리적인 글만을 쓰려고 하기보다는 때로는 손가락에 힘을 빼고 편한 글도 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