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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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연말 가요제를 보며

zeno 2007. 12. 30. 23:57
  어느덧 세밑이다. 자연스레 방송사들은 매일 밤, 연기대상, 연예대상, 가요대상 등을 보여준다. 어젯밤 놀러간 자리에서 S 모 방송사에서 준비한 연말 가요제 - 사실 명칭을 뭐라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가요제? 가요대상? 가요대축제? 방송사마다 명칭도 다르고 프로그램의 목적도 불분명해 뭐라고 해야 할지 참 애매하다. - 를 보며 식겁했다. 몇 년 전 매일 밤 체크해가며 봐왔던 연말 대상 시리즈와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직 다른 대부분의 연말 시상식들은 그렇고 그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 본 시상식은 달랐다. 우리 횰 누나가 '미니 콘서트'란 명칭을 붙이며 가수들의 무대를 소개했는데 기존에 자기 노래만을 부르던 형태에서 벗어나 온갖 합동무대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게 단순히 몇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 내내 지속되고 같은 장르 가수들끼리 합동으로 나오는 모습이 신선했다. 특히, 트로트 가수들이 서로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정말 신기했다!
  근데 보다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리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올해 가요계를 휩쓸었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더라. 몇 분에 한번씩 계속 불러내서 온갖 노래들을 부르게 시키고, 조금 있다 또 나오고. 게다가 10대 소녀들에게 '섹시 코드'를 덧붙여 그들을 성상품화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기분이 점점 더 나빠졌다.
  그 뿐이 아니었다. 각 레이블 혹은 소속사 - 예를 들면 SM, JYP, YG - 별의 무대는 정말 볼썽사나웠다. 특히 박진영의 무대는 가관이었다. 박진영이 심혈을 기울여 키우고 있는 가수들 - 원더걸스와 임정희는 제외하자. - 에게 자신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모습이 꼭 신인 가수 홍보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YG 떼거리들의 공연은 처음엔 흥겨웠지만 점점 죽지 않은 YG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장르였다. 장르를 나눠 신선함을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 이적과 인순이를 'LIVE'라는 장르로 나눈 것은 정말 가관이었다. 그럼 다른 가수들은 다 립싱크인건가효? 이럴 거면 애초에 다른 가수들과 함께 같은 장르로 나누던가, 아님 아예 빼던가, 라이브가 장르라니 이건 뭐...
  결국 가끔씩 접하게 되는 미국식 가요 시상식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순위를 매기지 않고, 이렇게 가수들이 한판 흐드러지게 노는 꼴이 오나전 미국의 시상식을 닮은 것이다! 결국 미국의 방식을 도입하려다가 나온 결과물이 어제 본 그것인 것 같다.
  그런데 이 배후에는 역시 '자본'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방송사의 시상식들과 비교해볼 때, 보다 선정적이고, 출연진 결정에서 배후 자본 - 광고주 뿐 아니라 음악 레이블들까지 개입된 - 의 영향이 커진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공중파 중 가장 자본의 입장을 잘 대변하느 S 모 방송사 답게 미국식 자본의 방침을 연말 가요시상식에도 그대로 대입한 것 같다. 맙소사!
  지금 하고 있는 K 모 방송사는 꽤나 다르다. 어제 한 S 모 방송사의 것이 트렌디한 21세기 형이라면, 오늘 K 모 방송사의 것은 맙소사, 20년전으로 시계를 돌려놓은 줄 알았다. 손범수가 15여년 전 '가요 탑텐'을 진행하던 방식으로 진행하자 한석준이 같은 방식으로 받고, 황수경은 쌩뚱맞게 '열린 음악회' 모드인 것 부터, 출연 가수진들을 남성/여성팀으로 나눈 구성, 평범한 음악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는 가수들의 무대 역시 어제 경쟁사의 프로그램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도 촌스러운 것이다! 오히려 같은 방송사의 예전 연말 가요 프로그램보다도 퇴화한 것 같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설마 원더걸스의 '텔 미'가 복고풍을 강하게 일으켰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