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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벨리 댄스

zeno 2007. 9. 22. 22:09
  그저께였다. 점심 시간에 학관 앞에서 어떤 벨리 댄스 동아리가 공연을 하던 것은. 점심 시간이어서 그런지 구경하는 사람은 많았다. 넉넉잡아 이삼백명 정도. 그 때, 문득 눈 앞에 또 다른 경광이 겹쳐졌다.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지나 보는 이는 1/10에 불과한 집회의 모습이.
  우울해졌다. 공연자의 마음, 관객의 마음이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공연자들은 순수히 벨리 댄스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일 수 있다. 허나 이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의식하고 있든, 의식하지 않고 있든 벨리 댄스라는 외래 무용이 한국에서는 '섹시'라는 이름의 코드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공연자들 스스로도 그 코드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고, 혹은 그 코드에 어느 정도 세뇌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성이라는 존재의 성이 '상품화'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공연 동아리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관객들이라고 별반 달랐을까.
  사실 경계는 모호하고, 또 선을 긋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어디까지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역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성보수주의의 영역인지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여성의 '성'은 분명 존중받고, 찬양받아야 하지만 '상품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성을 소비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이나, 스스로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는 여성이나, 또 다른 여성이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방기하는 여성이나 모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
  자신의 삶과 연관되었을 수 있을 집회에는 무관심하면서 주체와 객체가 모두 '성'을 '상품화'시키고 있는 벨리 댄스 공연에나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며 서글펐다. 우리는 이것 밖에 안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