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평 / Review (59)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 지음/푸른숲 p. 16 이상하게도 약한 모습을 자꾸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뭐랄까, 사랑하게 된다. 걱정하게 되고, 에잇, 왜 그렇게 못난 거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내쫓을 수가 없게 된다. "내가 엄마한테 항의할 수 있는 것은 왜 우리 아빠랑 이혼했느냐는 거야. 그건 내가 항의할 수 있지. 날 놔두고 어떻게 그렇게 가버릴 수가 있냐고...... 하지만 그다음 일은 엄마의 인생이잖아. 중요한 건 엄마가 정말 행복하냐 아니냐잖아." p. 48 "공부도 행복하게 해야 하는 거야. 어떤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니야. 네가 그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을 견딘다면, 그 희망 때문에 견디는 게 행복해야 행복한 거야. 오늘도 너의 인생이거든. 오늘 ..
나, 제왕의 생애 -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아고라 p. 294 나는 나 자신의 치명적인 나약함에 몸을 떨었다. p. 300 "... 그저께는 우리 아빠가 죽었고, 어제는 우리 둘째 형이 죽었어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며칠 안으로 엄마랑 나도 죽을 거래요." "그런데 왜 여길 떠나지 않는 거지? 왜 도망가지 않는 거냐?" "못 가요." 소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엄마가 도망 못 가게 해요. 엄마가 우리는 집에 남아서 가족들의 장례를 치르고 절개와 효를 지켜야 한댔어요. 가족은 죽어도 함께 죽는 거래요." 나는 갑자기 오싹 소름이 끼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한민국 원주민 - 최규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pp. 38 - 41. 변하는 건 없다 (한미 FTA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엄마는 기어이 둘째 누나를 중학교에 보냈다. 아무리 없는 살림이라지만 중학교 공부 시키는 것이 무슨 흠이 되겠냐 하겠지만 요즘으로 치자면 월셋방 살면서 외제차 굴리는 바람 든 젊은이 보듯 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얘기들을 하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신기해하거나 동정심을 보인다. 나 또한 70년대 도시의 졸업식 사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밀가루...... 그 시절 우리 마을에서는 아직도 보릿고개를 넘고 있었다. 당연히 대학까지 마친 그들과 운 좋게 중학교에 들어간 내 누이들은 같은 세대지만 다른 시대를 살았다. 결국 불행은 그것을 겪는 자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인데, ..
완득이 - 김려령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pp. 196 - 197. 장애라는 말에 아버지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사람한테는 죽을 때까지 적응 안 되는 말이 있다. 들을수록 더 듣기 싫고 미치도록 적응 안 되는 말 말이다. 한두 번 들어본 말도 아닌데, 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잇다. 그런데 가슴을 치는 말은 한 번 두 번 세 번이 쌓여 뭉텅이로 가슴을 짓누른다. "난쟁이다, 난쟁이!" 그냥 봐도 다 아는데 굳이 확인사살을 하는 사람들. "얘 아버지는 난쟁인데, 이 새끼는 좆나게 잘 커요." 나를, 그냥 나로 보게 하기를 원천 봉쇄했던 양아치들. "네 아버지 난쟁이라며?" 심심하고 마땅히 놀릴 거리가 없을 때 유용하게 써먹던 인간들. 나는 아버지를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굳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공지영 지음/푸른숲 p. 42. 뒷자리의 여학생이 더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 때문에 그들의 영상은 갑자기 사라졌다. 혜완은 갑자기 혼란을 느꼈다.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바라보렴. 그 울고 있는 여자 아이에게 다가가서 말해주고 싶었다. 별거 아니란다. 정말 별거 아니란다! 그런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일어난단다. 네가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바라보렴...... 그러면 너는 알게 된다. 니가 지금 느끼는 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울 일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산다는 건 바보 같은 짓거리들의 반복인 줄을 알게 될 거란다...... 자, 이제 울음을 그치고 물러서렴. 그 감정에서 단 한 발자국만, 그 밖을 향해서. p. 53. 혜완은..
주희의 해석을 따르자면 공자의 『논어』 제4편 이인(里人)편은 ‘인덕(仁德)이 있는 곳’을 다루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제4편 1은 ‘인덕(仁德)이 있는 곳’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이후 26까지의 문장들은 그 곳에 사는 한 현명한 노인(공자)이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들처럼 보인다. 텍스트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역시 현대 한국인들이 보통 유가에 갖고 있는 선입견 중 하나인 ‘도덕주의Moralism’로부터 크게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공자는 일관성 있게 인(仁)과 도(道)를 강조하고 있다. 8에서 등장하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문장은 필자 같은 일반 독자가 유가철학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문장 중 하나로써 기대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모든 텍..
마이 짝퉁 라이프 - 고예나 지음/민음사 pp. 101 - 103 "유치하게 뭐하는 짓이냐?" "원래 사랑은 유치한 거야." "놀구 있네." R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지금 내 심정은 상당히 미묘하다. 나는 열등생처럼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어 든다. 사랑이란 상품은 돌고 돌아야 하는데 늘 구매하는 사람만 구매한다. 나는 사랑을 쟁취하는 자들에게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R의 미니 홈피에 가면 남자 친구가 이벤트를 해 준 사진이 올라와 있다. 화살표를 땅에 붙여서 길을 인도하고 마지막에 도착한 목적지엔 하트 모양으로 세워 놓은 양초들에 불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촛불 가운데엔 남자 친구가 장미꽃 다발을 들고 서 있다. 사진은 분명 보라고 있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것들은 올리지 않는다. 그 남자는..
유령의 사랑 - 손석춘 지음/들녘(코기토) p. 28 '현명'은 때로는 '교활'이나 '비겁'의 다른 이름일 뿐이야. p. 318 무릇 사랑에 불륜이란 없소. 모든 사랑은 아름다운 거요. 하지만 조건은 있소. 두 사람 모두 진실로 서로 사랑할 때 그렇소. p. 333 혹시 형은 못난 후배들을 방관하면서 스스로 만족해온 것은 아닙니까? 형의 타협적 삶을 후배들의 못남이나 변절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는 과연 없었습니까? 홀로 조금 더 나아간 상태에서 뒤돌아보며 따라오는 후배가 없다는 이유로 머물 게 아니라 후배들을 다독여 더 나아갔어야 하지 않은가요. pp. 335 - 336 형의 모습에서 저는 이 나라 진보세력의 오늘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왜 진보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먼저 ..
배트맨이 돌아왔다. 가장 음울한 슈퍼히어로,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영웅 배트맨이 돌아왔다. 'The Dark Knight'라는 이름과 함께.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더 간지폭발인 수트를 입고 점점 진화하는 배트카와 바이크를 몰며 고담을 질주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The Dark Knight'(이하 다크 나이트)의 주인공은 Joker(이하 조커)다. 'Why So Serious?'로 요약되는 그의 존재는 지금까지 '자경단' 배트맨이 지켜온 고담을 뒤흔들어 놓는다. 두께가 3cm는 될 듯한 얼굴 화장에 괴기한 색감의 수트, 겉옷 안에 장치한 폭탄들, 정작 주요 무기는 칼, 인 조커의 존재는 배트맨에게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야말로 그는 '미친 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매번 바뀌는 ..
Sex And The City. 번역하자면 성/섹스와 도시.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절묘한 제목이다. 이토록 이 영화/드라마의 내용을 간명히 요약해 낼 수 있는 제목이 어디 있겠는가.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는 뉴욕이라는 세계의 수도에서 발에는 마놀라 블라닉의 하이힐을 신고, 손에는 루이 뷔통의 백을 들고, 귓볼엔 샤넬 넘버 파이브를 뿌리는 'chick'이다. 사실 한국에는 이 같은 여성을 '된장녀'라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긴 하지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대신 보다 전세계 - 그래봤자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서겠지만 - 에서 보편적으로 그 의미가 통하는 chick이란 말을 쓰도록 하자. 사실 뭐 영화에서 스스로 40대임을 인정하고, 친구 사만다의 50세 생일을 축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