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평 / Review (59)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여자의 침대 - 박현욱 지음/문학동네 pp. 74-75. 아무도 파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이 우리가 바라는 사람이 아니기에 우리는 아무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결코 아무하고나 사랑할 수 없다.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기준이 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어야만 비로소 그 아무에 속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아무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에 관한 한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조차도 결코 서로 사랑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안정된 박현욱의 글은 잔잔한 재미를 안겨준다. 그러나 비슷비슷하..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 - 강인규 지음/인물과사상사 지난 주말에 관심 도서 리스트를 정리하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다. 신간이기도 하고, 미국에 가는 김에 최신의 미국 문화 비평을 보고 싶어서 황급히 빌려 보았다. 주제 선정들은 좋지만, 아쉽게도 일부 주제가 겹치고, 주제에 비해 내용이 짧다. 다시 말해, 깊이가 조금 아쉽다는 것이다. 그래도 미국에 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리스트는 생겼다. 스타벅스와 무관심 애정을 갈구하는 것과 장애물의 비례 관계 손 씻기 팔뚝에 재채기하기 화장실 내 거리 유지 프로 스포츠의 지역성 공공도서관 장애인에 대한 배려 총기 성 패트릭의 날 의약산업 미국 내 유대인의 진보성 상업언론 신정정치 다문화 사회의 음식 연예인의 정치적 성향 엘리트주의의 부재 ..
디아스포라 기행 -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돌베개 서경식은 '인간성humanity'을 거듭해서 고민하게 하는 작가다. 그가 한국에 소개한 프리모 레비의 저작들이 그러하듯,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했던 폭력의 현장들을 고발하는 그의 글들은 읽는 이를 숙연케 만든다. 역시 그러한 책이다. 그 스스로 디아스포라인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흔적들을 되짚어 가며 읽는 이에게 끊임없이 '인간'에 대해 묻는다. 그 결과, 책을 다 읽고든 느낌은 말 그대로 '역겨움'이었다. 비록 내가 저지른 일들은 아니라 하더라도, 같은 '인간'이라는 종이 저지른 일에 대해 내 스스로 지금껏 몰라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모르며 - 지금 이 순간 이스라엘이 정부 차원에서 자행하고 있는 가자지구 공격 역시 인간이 ..
썸데이 서울 - 김형민 지음/아웃사이더 p. 369 "난 대학 내내 망설이면서 살았던 것 같아. 나답지 않게. 군대에 가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사회에 나와 장가를 가서도 난 항상 애매했고, 뭔가 내 뜻대로 확실하게 한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었어. 너 내 성격 알잖아. 맺고 끊는 거 확실한 거. 근대 정말 내 인생의 큰 그림에선 그러지를 못했어. 공부도 못했고 운동도 못했고 맨날 그 언저리에서만 뱅글뱅글 돌았으니까. 한번 이 악물고 매달려 보려고, 원래의 내 모습대로. 그래도 아직은 젊으니까." --- 읽은지는 꽤 됐는데 리뷰가 늦었다. 책 소개를 간략히 하자면, 현재 시사 피디로 일하고 있는 한 386의 잡문이다. 취재하며 겪은 일, 학교 다니며 겪은 일을 형식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문체로 풀어내..
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지음/문학과지성사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자이니 증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하겠지. 사랑도 마찬가지지만. 증오 역시 감정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지. 사랑이든 증오든 오직 행동으로 실현될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거야. 네 몸으로 사랑할 때, 그게 사랑이야.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어. 뭔가를 증오한다면 얼마만큼 증오하는지 네 몸으로 보여봐. 사랑한다면 사랑을 하고, 증오한다면 증오를 하란 말이야. 하지만 머릿속으로나, 그 잘난 혀가 아니라 너의 신체로 보여달란 말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알 수 있도록." --- 솔직히 언제부턴가 소설이 어렵다. 이 책 역시 어려웠다.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 볼 생각. Words hardly come to me.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고려대학교출판부 pp. 44 - 46. 그리고 내 생각에는 남성에게도 모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모성 말입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남성의 행위도 일종의 분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의 창조가 내적인 충만으로부터 이루어질 경우, 그것은 분만인 것입니다. 그리고 남녀 양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위대한 개혁은, 아마도 남자와 처녀가 모든 그릇된 감정과 혐오감에서 벗어나, 서로 반대되는 존재로서 상대를 찾지 말고 같은 형제자매로서, 이웃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연대하여 그들의 어깨에 부과된 어려운 성을 소박하고 진지하고 끈기 있게 함께 짊어지고 나아가는 데 있을 것입니다...
불량소녀 백서 - 김현진 지음/한겨레출판 p. 56 살면서 가장 편한 길은 기존에 닦여져 있는 길 위로 그대로 걸어가는, 기존 제도를 답습하는 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귀차니즘'은 인류의 어떤 이즘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 얻지 않은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p. 65 하지만 매일같이 성난 암고양이로 살 수는 없다. 무엇보다 화를 낸다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고, 우리들이 살기에는 세상에 화나는 일이 꽤나 많고 우리에게 날아오는 쓸데없는 소리는 빗자루로 쓸면 열 포대 채울 정도로 많기 때문에 여기에 일일이 화를 냈다가는 서른도 되기 전에 고혈압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누구 좋으라고! 좋은 일도 많이 해서 후배 불량소녀들에게 더 좋은..
네 멋대로 해라 - 김현진 지음/한겨레출판 p. 151 1년간을 철저하게 혼자 보내면서 너무나 무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침에 쓰윽 하고 일어나면 아이들이 떠들며 학교 가고, 나에게 남은 건 내가 나왔던 신문이나 잡지 쪼가리 몇 장과 불확실한 미래뿐이었다. 하루에도 열댓 번씩 그때 나는 남아 있어야만 했던 걸까, 그들이 나에게 무슨 소리를 해도 쥐죽은 듯이 잠자코 있었어야 했던 걸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로 힘들던 기간에 유일하게 나를 잡아주었던 건, 나는 내 소신에 따라 행동했다는 확신뿐이었다. 결코 그들에게 굽히지는 않았다는 생각과 내가 옳았다는 믿음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나마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외로움이 더욱더 극심해질 때는 내 그런 믿음조..
69 -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작가정신 p. 141 정말 화가 치민다. 놈들이 주장하는 유일한 이상은 '안정'이다. 즉, '진학' '취직' '결혼'이다. 놈들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구역질나는 전제조건이지만, 그것이 의외로 효과를 발휘한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진흙 상태와도 같은 고교생들에게 그것은 큰 힘을 발휘한다. p. 269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소수의 예외적인 선생을 제외하고, 그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을 내게서 빼앗아가버렸다. 그들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게 열심히 수행하는 '지겨움'의 상징이었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옛날보다 더 심해졌을 것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공지영 지음/오픈하우스 p. 13 '어떤 남자를 만나야 돼?' 하고 물으면 10자 이내로 대답하라고 하면 엄마는 우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 그래, 예전에 이런 말을 했을 때, 네가 깜짝 놀라던 걸 엄마는 기억해. 누가 엄마에게 요청하지도 않겠지만 엄마는 주례를 설 때도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 '혹시 이혼하게 되더라도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그런 결혼을 이어 가십시오'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헤어짐을 예의 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되어질 그런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