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설] 마이 짝퉁 라이프 <★★☆> 본문

평 / Review

[소설] 마이 짝퉁 라이프 <★★☆>

zeno 2008. 9. 1. 18:55

마이 짝퉁 라이프 - 4점
고예나 지음/민음사

  pp. 101 - 103
 
  "유치하게 뭐하는 짓이냐?"
  "원래 사랑은 유치한 거야."
  "놀구 있네."

  R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지금 내 심정은 상당히 미묘하다. 나는 열등생처럼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어 든다.
  사랑이란 상품은 돌고 돌아야 하는데 늘 구매하는 사람만 구매한다. 나는 사랑을 쟁취하는 자들에게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R의 미니 홈피에 가면 남자 친구가 이벤트를 해 준 사진이 올라와 있다. 화살표를 땅에 붙여서 길을 인도하고 마지막에 도착한 목적지엔 하트 모양으로 세워 놓은 양초들에 불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촛불 가운데엔 남자 친구가 장미꽃 다발을 들고 서 있다. 사진은 분명 보라고 있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것들은 올리지 않는다.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귀어도 그런 이벤트를 해 줄 것이다. 자기만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R 역시 다른 남자를 만나도 그런 이벤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R은 그런 이벤트를 늘 받아 왔으므로 다른 남자를 선택할 때도 그런 이벤트를 해 줄 만한 남자를 골라서 사귈 것이기 때문이다.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그렇다. 엇갈리는 사람은 엇갈리기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기만 하고, 아픈 사람은 아프기만 한다. 재화만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배급받지 못한 나는 내 사랑을 앗아 간 것처럼 사랑하고 있는 자들을 시기한다.
  나도 한때는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안 하는 것만 못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그토록 쏟아 부었던 에너지는 지금쯤 어디로 갔을가. 아직도 지구 어디에선가 내 사랑은 무중력 상태로 떠 있으리라.
   pp. 158 - 159

  생각하건대 나는 조선 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태어나 버렸다. 나는 요즘 같은 자유연애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는 연애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애라는 것을 하지 못한 채 결혼을 했다. 당연히 설렘이란 감정을 알았을 리 없다. 그들은 남자의 얼굴도 시집가는 날 알았다. 그 시대에는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이성이 아니라 어른들이 짝 지어 주는 사람과 결혼했다. 자기 의지로 고른 사람이 아닌데도 이혼하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 시대에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이유는 결혼도 연애처럼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 줄곧 연애를 해 왔듯이 또 연애하면 될 일이다. 여자의 기가 세졌기 때문에 이혼율이 증가했다는 이유는 빈약하다. 결혼이든 이혼이든 고장난명(孤掌難鳴)인 것이다.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 한쪽만이 아닌 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연애를 너무 많이 해 봤기 때문에 결혼도 몇 번 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연애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한 번쯤은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나 짚어 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연애가 없는 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다. 모두 연애를 하지 않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보다는 훨신 행복했을 것이다.
  요 근래 읽은 책 치고 오랜만에 별 두개반을 주었다. 이상하게 요즘 읽는 한국 20대 작가들의 소설은 연애 & 섹스가 키워드의 전부다. '88만원 세대'가 그러한 것인가? 이제 식상하다. 이건 뭐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냥 '사랑'이란 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여튼 얇아서 금방 읽을만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