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평 / Review (59)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는 평평하다 -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윤섭.김상철.최정임 옮김/창해 1. 세계화의 배후 2005년 겨울이었다. 한 대형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특이한 이벤트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유명 작가의 책을 사면 그의 신작을 덤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바로 토머스 L.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사면 『세계는 평평하다』를 함께 주는 행사였다. 이 독특한 마케팅 전략은 혁신적이었다. 재고품도 아닌 새 책을 무료로 주는 대신 미래 독자- 당사자와 주변인 -를 확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세계화를 논하는 작가 중 프리드먼만큼 유명하고 돈을 많이 번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프리드먼이 그의 저작들에서 공통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세계화의 모습을..
태어난 지 400여 년이 되도록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희대의 바람둥이가 있다. 구전민담이 1630년, 스페인의 신부이자 극작가인 띠르소 데 몰리나에 의해 『돈 후안,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Burlador de Sevilla y convidado de piedra』로 정리되며 탄생한 ‘돈 후안’이다. ‘귀족’신분과 그에 따르는 ‘명예’를 도구 삼아 욕망에 충실히 수많은 여자들을 농락한 돈 후안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많은 작가들에 의해 재창조됐고, 많은 민중의 성원을 받으며 죽지 않았다. 1844년, 역시 스페인 출신의 호세 소리야 이 모랄에 의해 『돈 후안 테노리오Don Juan tenorio』로 다시 태어난 그는 조금 변형된 욕망에 따라 난봉을 거듭하다 다시금 죽음..
B.E.A.utiful. 영화 에서 짐 캐리가 일상적으로 내뱉어서 유명해진 말이다. 사실 뷰티풀이라는 말,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브라보, 원더풀이라는 말은 간혹 쓰이더라도. 그래서 이 뷰티풀이라는 말, 한국인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저 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배운 사전적 의미 - 아름다운 - 만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래서 이란 이름을 단 이 뮤지컬은 낯설 수 밖에 없다. 뷰티풀 게임이란 축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20세기의 축구 황제라 불리는 펠레가 자서전 제목을 'My Life and The Beautiful Game'에서 비롯된 말이란다. 나아가, 이 뷰티풀 게임은 인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극 중 오도넬 신부가 존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늘 상대를 전투의 '적'이 아닌..
이라부- 이라부- 이라부- 이라부- 마유미- 마유미- 마유미- 마유미- 마유미-. (연극 내내 나오는 노래이다. 중독적이면서도 기에 감긴다.) 재밌는 연극을 찾던 중 1월 특별 할인이라는 매력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연극 를 보게 되었다. 원작자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은 재밌게 보았던 터라, 기대하며 보았던 연극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충실하게 구현함과 동시에 캐릭터의 개성을 더욱 잘 살림으로써 - 특히 마유미 간호사 역이 인상적이었다 -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일본어 이름이나 지명 등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고추장'을 등장시킨다던가 '도쿄'와 '동경'이라는 이름을 혼용한다던가 하는 등의 오류는 연극의 맥을 끊었다. 게다가 소극장의 특성이기도 하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김연수의 소설 은 흔히 일간지의 서평에서 ‘인드라망’의 사상을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일반인 독자에게 괄호 안에 쓰여진 ‘우리는 모두 각각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정도의 짧은 주석만으로는 ‘인드라망’이라는 낯선 단어의 의미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사상은, 그의 책을 펴든 뒤 한 대여섯 시간쯤 코를 박고 정신 없이 한 권을 다 읽어낸 즈음에야 비로소 피부 가까이 스며든다. 굳이 그 깨달음의 과정을 ‘스며든다’ 표현한 것은 말 그대로 그 사상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아주 편안하게, 그의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메시지는 피부로 스며든다. 머리로 깨닫는 것도, 마..
가수 이적의 3집 앨범 '나무로 만든 노래' 발매를 기념하여 대학로에서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이적은 공연이다'라는 부제를 갖고 소극장 콘서트가 이루어졌다. 이 글은 두 번 열린 콘서트 모두에 참가한 필자의 경험에 근거한 리뷰임을 밝힌다. 01. 소극장 사실 필자가 가본 소극장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콘서트로 꼽자면. 두 곳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05년도에 열렸던 '적군의 방'과 비슷하나 '나무로 만든 노래'라는 앨범 제목에 맞춰 꾸며진 공연장은 두 곳 다 비슷하게 꾸며졌다. 다만, 두번째 공연장 선택에서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시피, 처음 공연이 열렸던 SH클럽은 냉방이 미비했고, 두번째 동덕여대 센터는 쾌적했다. 음향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두 공연 다 맨 앞줄, 혹은..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 책 제목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아, 이 사람, 팔릴만한 자극적인 제목으로 책 내놨군'이라는 생각에 내용은 궁금하면서도 선뜻 읽기가 꺼려지던 터였다. 그러나 다음 주에 인터뷰가 잡힌 탓에 최신작부터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이거, 물건이다! 사실 지금까지 듣고 듣고 또 들어오던 내용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소위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이들이 줄창 써대도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할 수 밖에. 각설하고, 책 초반부인 35, 36쪽 양 쪽에 걸쳐서 나오는 은행들의 극기 훈련 양태는 충격적이다. 그의 지적마따나 정말 저래서 창의성은 무슨 창의성이 나오겠는가! 그저 한국의 조직 문화에 익숙한 '기계'들만이 양산될 뿐이지..
지난 2000년에 개봉했던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세간에 ‘발레 하는 남자아이 이야기’로 직접 보지는 않았더라도 대충 ‘내용’은 아는 그런 영화이다. 실제로, 그런 인식은 그다지 틀리지 않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11살의 소년답게 미래를 걱정하며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기 보다는 진정으로 발레가 하고 싶어서, 발레를 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어서 발레를 한 소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조금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굳이 대학에 와 접하게 된 ‘페미니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부당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규정으로 인해 힘들어하던 ‘빌리’와 ‘마이클’이라는 두 소년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라는 것이다. 한편, 이 글의 존재 의의상 ‘경제사’적인..
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문학세계사 p. 80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p. 108 2000년 가을은 작가 미셸 깽에게 최고의 계절이었다. 프랑스의 그르노블에서 있던 책과 영화의 페스티벌에서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면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로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북부지방 태생입니다. 나의 일은 현실을 바꾸고,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균열을 창조하고 일상에 주름을 만들고, 걸레질하고, 때로는 일상을 찢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일상에 의심을 품게 하는 일이죠. ..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스토리는 지극히 ‘권선징악적’이다. ‘악인’인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삼천 다켓이라는 거금을 빌려주는 대가로 트집을 잡아 ‘선인’인 상인 안토니오의 목숨을 빼앗으려다 결국 현명하고 아름다운 ‘포샤’의 지혜로 오히려 패가망신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 등이 열연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그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알 파치노의 열연 덕분인지, 극본 각색 과정에서 고려된 탓인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받아왔던 차별과 경멸, 억압 등을 강변하는 샤일록의 모습에서는 ‘약한 인간’의 모습이 발견된다. 이미 진부한 내용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서양에서 유대인이 기독교도들에게 받아온 미움과 푸대접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