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산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본문

평 / Review

[산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zeno 2008. 11. 23. 20:05

  p. 13

  '어떤 남자를 만나야 돼?' 하고 물으면 10자 이내로 대답하라고 하면 엄마는 우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
  그래, 예전에 이런 말을 했을 때, 네가 깜짝 놀라던 걸 엄마는 기억해. 누가 엄마에게 요청하지도 않겠지만 엄마는 주례를 설 때도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 '혹시 이혼하게 되더라도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그런 결혼을 이어 가십시오'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헤어짐을 예의 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되어질 그런 사람. 설사 둘이 어찌어찌한 일에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든, 서로에게 권태로워져 이별을 하든, 마음이 바뀌어서 이별을 하든, 그럴 때 정말 잘 헤어져 줄 사람인지 말이야.
  사랑... 영원하기를 바라지, 더구나 사랑하는 네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헤어진다면 엄마 역시 마음이 몹시 아플 거야.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이고, 일견 환경에 지배당하고, 일견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을 때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게 어렵게 느껴지면 하다못해 거울이라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싶지 않을 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도피처를 찾는 일이란다. 외부적인 죄는 언제나 존재하고 그 책임이 오로지 우리에게 속해잇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하지만 네게 말했듯이 그게 앞으로 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다. 만약 인생이 길이라면, 그건 항상 오르막으로 펼쳐지는 거야.

  ...

  고통만이 성장할 수 있게 해주죠. 하지만 고통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궁지에 빠진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은 결정적으로 고통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주머니에 해결책을 가진 사람을 조심하고, 당신에게 자기 마음을 얘기한 사람 외에는 모두 경계하세요(...) 흘러가게 내버려 두십시오. 가야 할 것은 가게 될 것입니다.

  p. 21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 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을 때도 있고,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라도 그들과 함께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시간들이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고독뿐입니다.

  p. 23

  슬픔이란 뭔가 새로운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이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감정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고 우리 내부에 있는 모든 것들은 뒤로 한 발 물러나 거기에 고요가 생겨나며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것이 그 가운데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온갖 슬픔은 긴장의 순간인데 우리들은 그것을 오히려 마비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고독합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거나 행동할 뿐입니다. 

  p. 24

  사랑하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 역시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도 배워야 하니까요. 모든 노력을 기울여 고독하고 긴장하며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됨입니다.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어 헌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 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결합을 행복이라 부르고 자신들의 미래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각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자기 자신까지 잃게 되며, 상대방과 또 다른 사람까지 잃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구역질과 실망, 빈곤 뿐입니다.

  p. 25

  상처 받을까 하는 두려움은 잠시 미뤄두자. 예방주사도 자국이 남는데 하물며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야 어떻게 되겠니. 사랑은 서로가 완전히 합일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두 살은 얽히고 서로의 살이 서로를 파고들어 자라는 과정일 수도 있단다. 그러니 그것이 분리될 때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니? 내 살과 네 살이 구별되지 않고 뜯겨져 나가며 찢어지겠지. 비명을 지르고 안 지르고는 너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픈 게 당연한 거야. 네가 오래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 그래도 난 쿨했어'라고 이야기 했을 때 엄마가 얼마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널 바라봤는지 기억나니? 만일 네가 그와 헤어지는데 그저 쿨한 정도로만 아팠다면 아마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였을 거야. 네가 그와 한 영혼이 되고 싶지 않아 진정 마음의 살을 섞지 않았든지, 아니면 아픔을 느끼는 네 뇌의 일부가 손상되었든지.

  p. 30

  왜 우리는 칭찬은 속삭임처럼 듣고, 부정적인 말은 천둥처럼 듣는지? 왜 내가 당신과 함께 나눈 긍정적인 얘기는 중요하거나 실제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이야기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지? 칭찬의 과도한 축소, 그리고 비판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은 진정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자아 존중감이 상처 입는다. 우리는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정복하려고 그들을 추적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자아 존중감을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격려를 감지하는데 실패하면서 말이다.

  p. 31

  너희들을 키우면서 만큼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덕지덕지 붙은 내 욕망과 집착과 편견과 그리고 타성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적도 없는 거 같아.

  ...

  그것은 남들을(설사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자식이기에 어쩌면 더) 자기 중독의 충족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p. 32

  당신은 진정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안도하는 것입니다. 치유란 늘 고통스러운 것이니까요. 그것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편견과 기대라는 관념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누구도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따름입니다.
  결국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성장하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달라지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더군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골치만 아프게 될 테니까요.'   p. 35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내 삶을 사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이기심은 남들이 나의 취향, 나의 자존심, 나의 이득, 나의 기쁨에 맞추어 살도록 요구하는 데 있습니다. 부인은 내가 나의 행복을 희생하여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부인은 부인의 행복을 희생하여 나를 사랑하고 나는 나의 행복을 희생하여 당신을 사랑하겠고, 그래서 불행한 사람 둘이 생겨나겠지만, 사랑 만세!

  p. 69

  우리는 쉽게 냉소주의자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진실이란 없으며 공정함이란 허구에 불과하고 관찰은 철저하게 편파적이며 모든 이론은 정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절반은 옳다.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거나 올바른 길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 또는 삶의 중요한 목적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리나 정의 혹은 목적을 발견할 수 없다거나 추구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의미 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p. 107

  에픽테토스는 노예였고 절름발이였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불구였다는 설도 있고 주인에게 맞아서 불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아무튼 그는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 틀림이 없다. 노예로 다시 로마로 보내졌을 때 그는 이미 해방된 노예인 에파프로디토스에게 고용된다. 그런데 해방 노예로서 노예의 비애를 잘 알고 있어야 할 에파프로디토스는 에픽테토스를 학대한단다. 그래서 에픽테토스는 알게 되었다고 해. 치유되지 않ㅇ느 상처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계속 그것을 전가한다고 말이야. 학대받는 며느리였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학대하고, 딸이라고 설움 당하던 어머니가 딸을 구박하고, 배고픔을 참으며 고생고생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저임금으로 아이들을 착취하고. 상처가 대물림되는 이유는 그것이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만일 엄마가 너희들에게 어떤 의미이든 상처를 주었다면 엄마 역시 엄마의 엄마에게 받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
  에픽테토스는 그래서 거기서 자신과 상대방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극복한 다음, 말하지. 단언한단다.

  인간은 자유를 원할 때에만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은 우리가 자신을 해치고 상처낼 때에만 우리에게 상처 입힐 수 있다. 불행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믿음, 선입견... 즉 표상이다. 

  p. 109

  위녕, 무엇인가에 표상을 투사하는 너의 배후는 무엇이니? 네 속에 없는 것을 네가 남에게 줄 수는 없다. 네 속에 미움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미움을 줄 것이고, 네 속에 사랑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네 속에 상처가 있다면 너는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고, 네 속에 비꼬임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비꼬임을 줄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의미든 너와 닮은 사람일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고 사랑하게 된 것일 테니까. 만일 네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와 어떤 의미이든 닮은 사람일 것이다. 네 속에 없는 것을 그에게서 알아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네가 남에게 사랑을 주든, 미움을 주든, 어떤 마음을 주든 사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네 것이 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두려워진다. 정말 두려워져. 

  p. 137

  엄마는 노력을 하면 그게 무엇이든 좋은 건 줄 알았어. 나를 오해하고 있는 친구에게는 어떻게든 그 오해를 풀어주려고 노력했고, 나를 미워하는 친구에게는 어떻게든 내 호의를 알려서 나를 좋아하게 하고 싶었다. 내가 믿는 신앙과 내가 믿는 이념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전파하고 싶어 안달이 나곤 했지. 그리고 그게 아주 잘하는 일인 줄 알았던 거여. 그러나 어느 날 내 소관인 것과 내 소관이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을 바보처럼 깨닫게 되었단다. 남의 마음이라든가, 날씨라든가, 네가 전화도 받지 않고 늦을 때 계속 전화를 걸어대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것은 노력해서 무엇을 하는 일보다 힘든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할 수 없는 일인지 알아차리는 것 말이야. 어제 만일 엄마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네 방으로 가서 너를 계속 귀찮게 하며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보라고 널 졸랐을 거야. 그리고 그 결과가 꼭 좋았을 거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참 이상하지. 살면서 우리는 가끔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때가 있고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가 있어.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다면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지혜'를 얻는 일이 되겠지. 그런데 이 세상은 말이야.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때를 훨씬 더 많이 준다. 소풍가는 날 나빠지는 날씨하고, 나 싫다고 가는 사람하고,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네 마음하고, 어떤 때는 그걸 견뎌야 하는 내 마음까지.
  그러나 네가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일은 내 망믕르 어떻게든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것, 기다려 주기, 따뜻하게 말해주기, 너에게는 너만의 고유한 상황과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기, 그러니 말하자면 네 마음이 이럴까 저럴까 억지로 - 결국은 정확하지도 않을 거니까 -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책이라도 들여다보거나, 훌쩍 가방을 들고 수영하러 가기.

  p. 144

  고통 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 어린 몸짓으로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그 고통에 함께 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 자비란 그런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p. 156

  글쎄, 글은 말이야. 이게 그림이라도 좋고 음악이라도 좋고 무용이라도 좋고, 어떤 예술 장르이건 말이야. 그건 오는 거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구. 유명한 곡, 유명한 그림, 어느 날 섬광처럼 내리친 영감에 의한 것이 많아. 과학자의 연구가 7년간에 걸쳐 완성되었다면 그것은 실험하고 기다리고 쌓아올렸던 연구의 시간이니 당연히 훌륭한 것이지만 예술은 불행히도 그것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7년 동안 쓴 단편이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여서 억지로 뜯어 고쳤을 확률이 더 높은 거야.
  그런데, 이 '오는' 영감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활자에 예민해 있어야 하고, 많은 글들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고 있어야 하고,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 지 관찰하고 통찰한 데이터들이 머릿속에 있어야 해. 그리고는 앉아서, 친구가 놀자고 메신저로 아무리 말을 걸어와도, 아무리 재미있는 축구 시합이 있어도 그런 것들을 물리친 채로 앉아 있을 마음의 용기와 엉덩이의 끈기가 필요한 거야.
  가끔, 스무 살부터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들고 절로 들어간다는 젊은이들을 보곤 하지. 솔직히 그럴 땐 걱정스러워. 왜냐면 이제 이 시대의 이 복잡한 삶은 단순히 20대가 관찰하고 통찰하기엔 너무 어려운 거야. 삶이 좀 더 단순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20대 초반에도 숱한 명작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던 것이, 대개 작가들은 폐결핵으로 일찍 죽는 일이 많았어. 그런데 요즘은 폐결핵 약도 좋고 수명도 늘었어. 29세 쯤 죽는 걸 요절이라고 한다면 그럴 확률이 너무도 적다는 거지.
  그래서 엄마는 그런 친구들에게 충고하곤 한단다. 그러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서 취직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좋겠다고 말이야. 왜 그러냐 하면, 돈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중요한 거니까. 엄마가 돈을 숭배한다는 오해는 안 할 테니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만, 숭배하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쉽게 거부해버리는 것도 현실과 위배되는 거야. 그래 그 돈을 버는 동안 너는 보게 될 거야.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돈 앞에 비굴한 자와 당당한 자, 두 아이를 거느린 가장이 돈 때문에 얼마나 자신의 자존심을 팔아야 하는지, 천박한 인간이 돈을 가졌다고 다른 이들을 얼마나 상처 입히고 있는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돈이라는 것을 따라 어떻게 몰려다니고 자신을 잃어가며 전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부류의 인간으로 변해 가는지.
  작가는 현실을 다루는 사람이다. 설사 공상이라 해도 현실의 요소들이 없다면 우리는 전혀 그것과 교감할 수 없어. 그래서 작가는 이 모든 현실을 알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 읽으며 기다리는 거야. 소설이, 글이 내게로 올 때까지 말이야. 그러면 사람들은 묻곤 하지?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고, 또 읽는데 소설이 혹은 글이 오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죠? 그러면 엄마는 대답한단다.
  "네, 그러면 쭉 돈을 벌고 읽으며 살면 됩니다. 그것도 행복한 삶이니까요."

  p. 177

  위녕, 누군가 널 아프게 한다면 그는 너를 사랑하고 잇는 것이 아니다. 그가 군대에 가야 한다거나, 그가 공부를 위해 널 만나는 시간을 줄이거나,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때문에 너와 함께 극장에 가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를 한는 게 아니란 건 알겠지. 세상에는 의외로 남자건 여자건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이건 정말인데 어쩌면 엄마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지. 누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내가 이런 그의 행동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남을 감히, 사랑을 할 수 있겠니?
  그러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고 네가 진정, 그 사람이 삶이 아픈 것이 네가 아픈 것만큼 아프다고 느껴질 때, 꼭 나와 함께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가 진정 행복해지기를 바랄 때, 그때는 사랑을 해야 해. 두 팔을 있는 힘껏 벌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네 힘을 다해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해. 하지만 명심해야 할 일은 우리는 언제나 열렬히 사랑하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

  다만, 그 순간에도 언제나 정직해야 한다는 것은 잊지 마라. 언젠가 엄마의 소설을 읽고 네가 말했잖아. 헤어지고 나서 제일 후회가 되는 일은, 좋아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말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이야. 수많은 연애 지침서들이 그 남자에게 애가 타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리고 남자들은 실제로 그런 여자들의 전략에 쉽게 애가 타기도 하지만, 그리하여 연애의 주도권을 잡고 친구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문자와 전화가 울려오기 낳지만 글쎄, 누군가의 말대로 그건 연애에는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인지는 모르지만 사랑에는 실패하는 일이야. 네 목표가 연애를 잘 하는 것이라면 그런 책들이 유용하겠지만 네 꿈이 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라면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엄마가 말했잖아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 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이 없이 다 주어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믿는다고 했지만 기실 망므 한구석으로 끊임없이 짙어졌던 의심의 그림자가 훗날 깊은 상처를 남긴단다. 그 비싼 돈과 그 아까운 시간과 그 소중한 감정을 낭비할 뿐, 자신의 삶에 어떤 성장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거지.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려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이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p. 189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왜 꼭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까? 당신이 그에게 헌신하고 잘 해주었다고 해서 그가 왜 꼭 그것을 알고 거기에 보답해야 합니까?"

  p. 196

  모든 위인은 다시 말해 모든 훌륭한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시대에는 모두가 진보의 편에 서 있어. 생각해봐. 이미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하는 보수의 편에 서서, 이미 있는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인류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니? 그러니 역사는 그런 이들을 기억하지는 않는 거지. 

  p. 202

  위녕,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어제는 태풍이 대한 해협을 통과했다지. 태풍은 열대의 뜨거움을 강제적으로 온대 지방으로 전달해 내는 자연의 방식이라는데, 고여 터질 것 같은 열대의 정열이 온대지방으로 오면 거의 폭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엄마는 오래 전에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 일이 있어. 마음 속의 압력들을, 사소한 분노들을, 실망감과 상처들을, 어쩌면 뜨거운 사랑까지도, 조금씩 처리하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그렇게 내 마음의 뜨거움들도 다른 이들에게 가서 폭력으로 변하지 않을까 함께 겁이 났었지. 

  p. 228

  엄마가 서른 살 무렵, 선머슴처럼 하고 다니던 엄마에게 한 선배가 말했어. 엄마는 그때 크지도 않은 가슴을 헐렁한 티셔츠로 어떻게든 가리고 좀 더 터프하게보이는 것이 멋있고 지적인 여자인 것처럼 느끼고있었단다. 그런 내게 선배가 말하더구나.
  "앞으로 네가 진정으로 여자일 날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앞으로 그 날이 다할 때까지 너의 여성성을 만끽해라!"

  p. 241

  변명하는 말이 진정 아니기를 바라지만, 젊은 날의 고통은 얼마나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인지 엄마는 이제는 알게 되었단다. 왜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그건 그냥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상투어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을. 젊은 시절은 삶의 뿌리를 내리는 계절. 무사태평하게 그 시절들을 보내다가 이미 모든 것이 무겁게 익어버린 가을날에 태풍이 덮치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가을에 태풍이 덮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래, 그러면 되겠지. 그러나 위녕, 이 지구에 태어나 일생을 산 사람들 중에 오래도록 무사하고 태평하게 산 이는 아마도 아주 적을 거야. 거의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엄마가 다 조사해보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거야.
  대신 말이야,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기는 해. 직면하는 것, 회피하지 않는 것,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충분히 거기에 상응한 고통을 겪는 것. 그래, 충분히 거기에 상응한 고통을 겪어내는 것, 그래야 젊은 시절의 고난이 진정 값어치가 있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