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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보야, 문제는 불평등이야! - 프리드먼, 세계화의 裏面(이면)을 外面(외면)하다 본문

평 / Review

[서평] 바보야, 문제는 불평등이야! - 프리드먼, 세계화의 裏面(이면)을 外面(외면)하다

zeno 2008. 5. 16. 08:19

세계는 평평하다 - 2점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윤섭.김상철.최정임 옮김/창해

1. 세계화의 배후

  2005년 겨울이었다. 한 대형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특이한 이벤트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유명 작가의 책을 사면 그의 신작을 덤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바로 토머스 L.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사면 『세계는 평평하다』를 함께 주는 행사였다. 이 독특한 마케팅 전략은 혁신적이었다. 재고품도 아닌 새 책을 무료로 주는 대신 미래 독자- 당사자와 주변인 -를 확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세계화를 논하는 작가 중 프리드먼만큼 유명하고 돈을 많이 번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프리드먼이 그의 저작들에서 공통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세계화의 모습을 닮았다. 애초에 세계화는 도서 시장에서 이런 큰 위험을 감수하고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춘 거대 출판 자본이 그 결과 더 큰 이윤을 획득하듯, 권력을 가진 자의 권력 증식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 한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한 ․미 쇠고기 협상에도 이런 특성은 잘 드러난다. 한국 정부는 한 ․ 미 FTA의 일환으로 협상을 진행한 결과 자국에 불리한 협정을 맺었다. 그 결과, 미국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 나아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배가된다. 이런 전례는 더 나쁜 조건을 갖춘 미래의 협상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의 배후에는 영리한 작가, 프리드먼이 있다. 세계적인 신문 ‘뉴욕타임스’의 국제 전문 칼럼니스트답게 방대한 취재원과 뛰어난 정보력을 활용하여 세계화의 본질과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그는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화를 통해 득을 보는 자신의 입장에서 이를 옹호하는 대중서를 써 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부와 명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 상 그는 결코 세계화라는 현상을 정치학이나 경제학 등의 학문을 통해 분석하는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세계화의 배후에서 ‘세계화 전도사’를 자처하며 여러 권의 저작에 걸쳐 쉽게 세계화를 분석하고, 독자들에게 행동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뒀다.

2. 세계화의 중심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를 통해 전작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와 또 다른 분석과 처방을 내린다. 예를 들어, 그는 2001년 9 ․ 11 발생 이전까지를 초국적 기업이 이끄는 ‘세계화 2.0 시대’로 규정하는 한편, 그 이후를 평평해진 세계에서 개인이 중심이 된 ‘세계화 3.0 시대’라 명명한다. (22-23쪽) 그는 이런 가정에 근거해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여러 사례를 근거로 들며 이른바 ‘평평화’를 옹호하고 독자들에게 이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그가 스스로를 영리하게 위치시키기에 가능하다. 그는 “자유무역, 규제 완화, 통합의 진전, 낮은 세금(세계를 한층 평평하게 할 모든 것)을 선호”하는 ‘웹당(Web Party)’라 자처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이들로 “공화당의 친기업 그룹”과 “민주당 내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들”을 꼽고 있다. 한편 그의 대척점에는 “지나치게 많은 외국인과 외국문화가 유입된다는 이유로 세계화나 세계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밀접한 통합을 싫어하는 공화당 우익을 비롯한 사회적 보수파”와 “아웃소싱을 손쉽게 만들어주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좌익”이 연합한 ‘장벽당(Wall Party)’이 있다. (358쪽) 이런 이분법은 흔히 스스로를 ‘이성’과 ‘양식’을 갖춘 정치적 중립자라 가정하는 일반인들에게 호응을 이끌어내 자신의 논리와 주장에 힘을 더해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구좌파, 반미주의자, 반세계화 세력” 등을 묶어 자신의 적으로 설정하고, 파시즘과 이슬람 근본주의, 공산주의를 한데 묶어 “이슬람-레닌주의”라 명명하며 비판하고 있다. (669-671쪽, 683쪽) 이 구분 역시 그 자신을 ‘선’과 ‘정의’의 대변자로 보이도록 만든다.
  그래서 프리드먼이 ‘평평화’라고 명명한 최근의 세계화는 일견 ‘자연’스러우면서도 ‘좋은’ 것, ‘올바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세계가 점점 더 가속적으로 평평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가 모두의 생활을 좀 더 낫게 만들어주고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제시하는 ‘평평화 동력’에는 허술한 점이 많다. 따라서 그 세계화라는 것 자체의 긍정적 측면 역시 의문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그는 ‘승자 독식’이 과거의 모델이라 공격하며 IT 혁명과 함께 ‘업로딩’이 보편화 된 오늘날 ‘평평화’는 ‘오픈 소스 운동’ 등에 기반한 커뮤니티 개발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두를 승자로 만들어 준다고 논증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오픈 소스 운동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무관하게 IT 혁명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들이 대가 없이 자신의 재능을 투입하여 성장했다. 아파치나 리눅스 같은 이 운동의 결과물은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협할 정도의 뛰어난 수준을 성취했다. 그 결과, IBM이 오픈 소스 운동과의 경쟁을 포기하고 아파치를 후원하는 등 커뮤니티 개발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업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이는 일견 기업들이 공익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국 이로 인해 그 기업이 더 큰 이윤을 얻게 되기 때문이었다. 커뮤니티 개발 소프트웨어는 결국 소수의 고급 엔지니어나 전문가만이 사용할 뿐, 대중은 기업이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 대신 더 저렴하고 뛰어난 커뮤니티 개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만들어 낸 대중용 소프트웨어를 구매한다. 즉, 기업은 오픈 소스 운동에 투자해 훨씬 더 큰 시장에서 더 큰 매출을 올려 기존의 ‘승자 독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무료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기업은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을 성립하고 지원하는 특정 형태의 독점적 소프트웨어와 IT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157쪽)
  한편, “개인 혹은 커뮤니티에 의한 업로딩이 이미 거대한 평평한 동력이며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은 그가 조망하지 않은 혹은 못한 이면을 갖고 있다. 프리드먼은 업로딩을 통해 세계의 어느 누구든 손수제작물 (UCC) 등을 통해 자유롭게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온라인 저작물에 관한 저작권법이나 통신법 등은 업로드물의 내용이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타인 저작물의 활용을 금하기에 민주적 의사 표현의 가능성은 극히 제한된다.
  게다가 그의 주장과는 달리 업로딩이 “문화적 자율성과 특수성을 보존하고 강화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힘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717쪽) 실제로 업로딩 되는 팟캐스팅이나 블로그 포스트의 대다수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를 내용으로 한다. 혹은 다른 나라에서 이를 모방한 프로그램을 다루거나 그것들에 대한 감상이 주를 이룬다. 즉, 이미 온라인 공간에도 미국의 문화가 팽배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자율성’과 ‘특수성’을 가진 지역 문화는 이미 미국화 된 사람들에게 ‘전통’이라는 측면만을 부각시켜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오늘날 한국 청소년들에게 힙합은 사물놀이보다 더 친숙하다. 사물놀이는 기껏해야 ‘전통문화’라는 껍질을 쓰고서야 비로소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즉, ‘전통문화’가 ‘외국문화’라는 기존 ‘객체’에게 ‘주체’의 자리를 내주고 새로운 ‘객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초래할 수 있는 업로딩은 결코 프리드먼이 꿈꾸는 그런 ‘평평화 동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프리드먼이 적극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자유무역 역시 그의 논지만으로는 그 실효성이 의문이다. 자유무역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에 근거하고 있다. 비교우위론은 근대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교역 양자 모두의 이득을 가져오는 이론적 근거로 각광받았지만, “리카르도가 책을 썼던 시절만 해도 재화는 교역이 가능했지만, 지적 노동과 서비스는 대부분 교역이 불가능”했다는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프리드먼은 이에 대해 “대기업의 아웃소싱이나 생산설비 이전으로 인해 일자리가 종종 무더기로 없어지고 단순한 서비스 업종이나 생산직 일자리의 경우 유럽, 미국, 일본으로부터 인도, 중국, 구소련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세계경제는 더욱 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일자리, 특히 전문적인 일자리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중소기업들에 의해 많이 늘어”난다는 재반론을 펴고 있다. (365, 367-368쪽) 즉, 평평화를 통해 일종의 ‘블루 오션’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간과한 논리 전개이다. 기존 1 ․ 2차 산업은 일자리 창출 및 소멸 정도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3차 산업의 경우, 특히 프리드먼이 강조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혁신이 일어나며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기존 산업이 사라지는 경우에는 일자리가 얼마나 생겨나고 또 사라질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간과하고 자유무역의 미래를 낙관하는 프리드먼의 근거는 미약하다.
  한편, 프리드먼은 “평평한 세계에서 한 개인이 번영을 누리는 데 필요한 필수요소는 각자 자기 자신을 ‘언터처블(untouchable)’, 즉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 방법을 생각해두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즉, 평평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의 일을 아웃소싱할 수 없고 디지털화할 수도 없으며 자동화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88-389쪽) 이는 결국 모두에게 ‘자기 계발’을 통한 ‘무한 경쟁’에 나서기를 촉구하는 주문이다.
  다행히도 이 과정에서 도태된 이에게도 최소한의 사회적 대책은 존재한다. 이른바 ‘사회보장제도’라 불리는 체제의 일종인 ‘실업보험’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이를 ‘불필요한 지방질’이라 비판하며 이 것을 “일정 기간 동안 과거 당신이 갖고 있던 특별한 능력에 대해 보상”하는 ‘임금보험’이라는 새로운 ‘좋은 지방질’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536쪽) 이 보험체계는 노동자의 ‘일반적인 능력과 특별한 능력’을 전제한다. 아웃소싱으로 인해 기존의 일자리를 잃고 새 일자리를 얻을 경우 다른 이들과 공통적인 ‘일반적인 능력’에 대해서만 임금을 받게 되므로 그가 보유한 ‘특별한 능력’에 대해 보상하는 보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견 타당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프리드먼이 ‘특별한 능력’의 예로 제시하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공인회계사 등 각종 전문직 자격증을 따는 노동자의 수가 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직까지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런 특별한 능력이 아닌 정규 대학 교육을 통해 획득 가능한 ‘일반적 능력’만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특별한 능력’을 갖고 “‘컴퓨터나 로봇이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없는 일 또는 재능 있는 외국인이 더 낮은 비용으로 수행할 수 없는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인 ‘언터처블’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433쪽) 결국, 모든 이를 위한 제도인 ‘실업보험’과 달리 ‘임금보험’은 소수 상위 노동자만을 위한 ‘귀족보험’인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미루어 보아 프리드먼의 생각 기저에는 다국적 기업과 ‘언터처블’한 개인 위주로 ‘평평화’라는 이름의 세계화를 진행하여야 하다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평평화’는 모든 이에게 번영을 약속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인도의 관계에서 미국의 기업들이 각종 단순 서비스 노동을 인도의 기업들로 아웃소싱하면 일단 인도의 부(富)가 증진된다. 그 결과 인도 국민들은 미국 기업 제품을 보다 많이 소비하게 되고, 이는 미국의 부(富)의 증진으로 이어져 호혜의 결과를 낳는다.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이 때, 국가는 이런 거래가 보다 원활해지도록 규제를 철폐하는 등의 친기업적 정책을 통해 기업과 개인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는 동전의 앞면만을 본 분석이다. 이런 세계화는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자’의 이익 증진에는 크게 기여하는 한편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를 고착화시키기 때문이다. 앞의 예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 기업이 인도 기업에게 콜센터 등의 서비스 노동을 아웃소싱하는 것이 인도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효율성을 고취한 미국 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함으로써 더 큰 이윤을 획득함으로써 ‘도약’하게 된다. 결국, 인도 기업이 미래에 기존 미국 기업의 수준에 도달했을 때 미국 기업은 이미 훨씬 더 멀리 앞서 나가 또 다른 사양 산업을 인도 기업에게 아웃소싱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미국 기업이 파트너인 인도 기업을 기다릴 이유도, 당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진국이 하나의 과실을 얻는 동안 선진국이 후진국으로부터 둘의 이득을 획득하는 먹이 사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약자에게 하나를 내주고 강자가 새로운 열을 갖는 다른 형태로 변화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전무한 전세계적인 ‘공급사슬’을 형성해 이윤을 극대화했다며 프리드먼이 극찬해 마지않는 월마트의 경우 역시 극단적인 ‘테일러주의’를 활용함으로써 자본가-노동자 간, 유통업자-제조업자 간의 격차를 고착 ․ 심화시킨 사례이다. 예를 들어, 성별과 사용 언어까지 고려해 직원 개개인의 작업 속도를 체크하고 이를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컴퓨터 시스템은 일견 노동자의 편의를 위한 것인 듯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는 결국 노동자의 모든 측면을 파악해 노동 강도를 최대한으로 높이고자 하는 기존 ‘테일러주의’의 진화형에 불과하다. 한편, “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point-of-sale terminals)”이라 불리는 제조업자들을 상대로 한 ‘적기 생산’ 시스템 역시 유사하게 기존 ‘도요타주의’를 보다 확장한 사례로 볼 수 있다. (226-227쪽) 즉, 자본가를 비롯한 기득권자에게는 ‘축복’인 세계화가 기존의 피기득권자에게는 노동 강도를 높일 뿐인 ‘저주’인 것이다.
  ‘평평화’ 현상과 이의 동력, 그리고 대처 방안, 미래 등을 논한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는 보편자 혹은 제3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모든 이에게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은 결국 기존의 불평등 및 사회 문제들을 심화 ․ 확대시킴으로써 자신의 이득을 보다 증진시키는 프리드먼 같은 ‘가진 자’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다. 실제로, 프리드먼은 백인이자 미국인이며, 화이트칼라로서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화를 진전시키는 ‘세계화의 중심’이다.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나라의 고위 관료나 대통령, 기업의 중역이나 CEO 등 이른바 ‘TCC(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이거나 혹은 그에 가까운 이들이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세계화는 일견 모든 이의 행복을 가져오는 듯하지만, 결국 기존의 차이를 확장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가진 자’를 대변하는 프리드먼의 특성은 책 전반에서 미국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번역본 개정증보판 기준으로 총 800여 쪽 가운데 약 1/4 가량이 ‘평평화’가 미국에 미치는 영향, 미국의 현재 상황 진단, 이에 필요한 미국의 대처법 등에 할애되어 있다. 즉, ‘세계화 전도사’를 자처하는 프리드먼이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단 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실제로, 책 전체의 1/4 가량을 ‘평평화 동력’의 설명에 사용하고, 120쪽 정도를 ‘국제 칼럼니스트’인 자신의 본분에 걸맞은 지정학 분야와 ‘평평화’의 관련성에 대해 쓰는 한편, 책의 상당 부분을 세계화에 대처하는 미국의 입장에 할애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즉,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한 ‘개발도상국’을 위한 부분과 비교해 볼 때, 이 책은 ‘미국에 의해, 미국을 위해, 미국의 세계화’를 다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에서 제시되는 대부분의 사례가 미국이 오늘날 가장 위협적인 상대로 여기는 중국 ․ 인도, 2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만하다. 21세기 현재 세계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언급 없이 미래의 거인으로 부상할, 혹은 이미 부상한 두 나라에 주로 사례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프리드먼이 미국인으로서 ‘평평화’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드러내준다.
 
3. 세계화의 지휘

  세계화의 힘은 강력하다. 이는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난 지구 너머 브라질에 사는 친구와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채팅을 했다.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진행된 ‘평평화’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런 세계화를 적극 옹호하고 이에 순응하기를 요구하는 프리드먼의 책 전반의 논지는 상당히 완결적이며 치밀하다. 내 생애 지금껏 읽어온 책 중 이토록 읽는 내 스스로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들고 당장이라도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활동을 그만두고 내 또래 다른 이들처럼 ‘자기계발’로 투신하기를 강하게 유혹한 책은 없었다. 그만큼 프리드먼이 들려주는 세계화의 현실은 공포스럽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행복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당장 이번 연휴만 하더라도, 지난주부터 계속 이 책을 붙들고 읽느라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행위 자체가 ‘평평화’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써 한 것이었기에 연관성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프리드먼이 ‘평평화’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기를 내심 기대하는 그의 딸을 비롯한 미국 대학생들이 항상 극심한 성적 경쟁에 시달려 주중에는 잠을 아껴가며 공부를 하면서도 주말에는 정반대의 세기말적 유흥을 즐기는 생활의 ‘극단적 분리’ 현상을 겪는 것이 과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그 같은 평생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에서 탈락할 시에는 최소한의 행복이나마 확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프리드먼은 이런 ‘평평화’를 하루 빨리 확대 ․ 강화하자고 세계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것이 그를 비롯한 이른바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 역시 그런 세계화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반론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여 현행 세계화에 대해 비판적인 독자까지 포섭할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장밋빛 미래와 현행 세계화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예견하는 미래는 상당히 다르다. 당장 지난 30여 년 간 추진된 세계화로 인해 심화된 현실의 불평등은 프리드먼의 미래 전망을 ‘남의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세계화를 통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난 이들도 많지만, 그 대가로 프리드먼을 비롯한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한층 높아졌고, 그들과 이제 갓 세계화에 발을 담군 이들의 차이는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예를 들어, 프리드먼이 극찬하는 IIT나 칭화대생 들이 모두 빌게이츠나 제리 양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수지가 안 맞아 중국으로 옮겨온 공장이 과연 미국의 첨단 산업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세계화가 무용하다고, 전세계가 ‘폐쇄경제’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다리 걷어차기’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국 주도의 현행 세계화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호도하고 있는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는 본래 집필 의도대로 이런 ‘평평화’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한 ‘비판적 독서’의 필요성이 도출된다. 현실을 ‘색안경’을 끼고 곡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오도된 현실을 ‘성경’인양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 프리드먼이 미국을 위해 쓴 책이 한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입장에 완벽히 들어맞는다고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문제점을 느낀다면, 혹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혹은 이것이 따라야 할 대세인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대안 세계화’의 모색이 필요하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프리드먼도 인정하고 있듯이, 아직 “세계는 완전히 평평하지 않다.” (652쪽) 그가 그렇게 평평하지 않은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려고 하듯, 이에 대한 대안적 노력도 가능하다. 굳이 평평하지 않은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 것 없이, 평평하지 않은 그대로를 긍정하고 모두가 번영과 공존을 함께 이루는 세계를 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상을 현실로 바꾸려면, 정확한 현실 인식과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 체 게바라는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