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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벗겨내면 새로운 면이 보이는 양파 같은 영화 -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본문

평 / Review

[영화] 벗겨내면 새로운 면이 보이는 양파 같은 영화 -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zeno 2007. 5. 29. 01:01
  지난 2000년에 개봉했던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세간에 ‘발레 하는 남자아이 이야기’로 직접 보지는 않았더라도 대충 ‘내용’은 아는 그런 영화이다. 실제로, 그런 인식은 그다지 틀리지 않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11살의 소년답게 미래를 걱정하며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기 보다는 진정으로 발레가 하고 싶어서, 발레를 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어서 발레를 한 소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조금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굳이 대학에 와 접하게 된 ‘페미니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부당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규정으로 인해 힘들어하던 ‘빌리’와 ‘마이클’이라는 두 소년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라는 것이다.
  한편, 이 글의 존재 의의상 ‘경제사’적인 측면을 고찰해보자면, 영화 내용 전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광부들의 파업’에 집중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지만, 경찰들과 대치하는 광부들의 모습은 1979년 영국에서 대처 총리가 집권하면서 이루어진 민영화 ․ 임금삭감 ․ 노조와해 등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에 이미 광산업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불어 닥친 구조조정 바람에 의해 생존의 위협을 느낀 탄광 노동자들은 영화에서처럼 그토록 맹렬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경직적인 노동시장은 노동자들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예를 들어, 1920년대와 30년대의 대공황 당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명목임금 유지 - 실질입금 상승 - 높은 실업의 연쇄관계를 불러일으켜 욓려 노동자들의 후생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다. 고용되어 있을 때는 높은 임금이 보장되지만, 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 앞에서 일개 노동자에 불과한 개인은 실직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렇게 직장을 한번 잃으면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기 때문에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이라는 생존의 위협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단결’만을 내세워 대응하는 것은 회사 측은 물론이고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한편, 최근 유한킴벌리 등에서 활용되고 있는 근무시간 단축을 통한 교대 인력 증가, 일괄적인 소량의 임금 삭감 대신 고용량 증가 등의 방법 등을 사용하면 노동자들의 권익도 지키면서 회사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시 ‘강성노조’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파업이 발생한다면 그런 대응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만약 회사 측에서 이런 방식의 채택으로 인해 추가되는 비용마저 부담할 수 없겠다고 버티면 역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사실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이런 생각까지 전개시키기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단순히 소년(들)의 성장 혹은 자아실현을 다룬 듯한 이 영화가 당시 시대상을 정확히 묘사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에는 이처럼 주제 의외에도 잘 찾아내면 ‘재미’와 ‘생각’을 가져다주는 것들이 있다. 때문에, 이처럼 다층적인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