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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9년 오늘 한국에서 이명박 씨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범주는 꽤 넓다. '자본주의 이후'를 소망하는 좌파에서부터 '상식의 회복'을 말하는 자유주의자들까지, 최소한의 양식을 가졌다 자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만 봐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에게 '이명박'이라는 이미지는 악(惡)이라기보다는 추(醜)에 가까운 듯하다. 그런데 이명박 씨에게 진저리를 치는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는 다른 사람들일까?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거창한 이야기 말고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고 0교시, 우열반, 보충학습 따위를 실시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고 들고일어났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
2009년이 어떤 해가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방송 시간이 모두 끝나버린 시간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 채널처럼 명멸하는 점과 지지직∼ 하는 소리만 날 뿐, 아무것도 안 보여서 차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을 살아낸 우리들이 2009년을 어찌 밝게 전망할 수 있을까. 물가와 몸무게를 포함해 싹 다 올라가기만 하는데, 그 중 안 올라가는 건 내 월급뿐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처럼 아직 1월인데도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또 올 한 해를 어찌 견디나 싶어 덜컥 겁이 먼저 든다. 다만 살아서 견디는 것만이 지상 과제가 된 88만원 세대에게는 올 한 해가 또 어떤 해가 될까. 어떤 해가 되든, 더 늦기 전에 오늘의 88만원 세대들은 한번 꿈이라는 것을 꿔 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부분균형’이라는 분석 틀을 만든 앨프리드 마셜이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다”라고 했단다. 이후에 마셜의 책을 꽤 많이 읽었는데, 정말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찾지 못했다. 요즘 다시 부활하는 케인스의 적 중에 한 명이, 바로 이 마셜이었다. 어쨌든 이 한 문장은 스무 살 청춘이었던 나의 가슴을 뛰게 했고, 내가 태어난 이유를 비로소 찾은 것 같았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개뿔, 경제학!”이라는 말이 나왔다. 외환위기 시절 한국의 경제학은 모든 것을 은폐하려고만 했고, 과학은 숫자로 가득한 예쁜 도표에서만 존재했다. 이제 마흔이다. 다시 이 문장을 접하고는 “미네르바가 사회과학의 여왕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점심이나 저녁식사, 그리고 차를 마실 때 미네르바보다 더 끔찍하고 참혹하게 미래를 ..
‘한국 지성의 죽음’이란 이 글의 제목은 주말 잠결에 부고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무심코 받았다가 눈을 부비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기껏 ‘나의 죽음’뿐이다. 물론 내가 한국 지성의 대표는커녕 지성 축에 끼인다고도 절대로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 지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이 글은 그런 이유로 내가 지성이라는 가정 하에 쓰는 지극히 서글픈 개인적 유서 같은 것에 불과하다. 나 자신을 지성이라고 말하기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음은 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는데, 지성을 ‘권력과 자본을 위시한 모든 권위와 압력으로부터 독립한 자유로운 아웃사이더 아마추어 자유인-교양인-全人의 심성과 실천’이라고 보면 더욱 그렇다. 지성을 이와 다르게 정의하는 예도 많지만 이 글에..
어제, 올해 마지막 노숙자 인문학강의를 했다. 괴상망측한 우익 역사교육 소동으로 시끄러운 탓만은 아니었지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제로 관련 영화와 예술작품들을 함께 보았다. 북한 배경의 007영화에 동남아의 집과 물소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처럼 함께 웃은 것을 시작으로 서양의 동양침략을 정당화한 수많은 영화나 그림들을 노숙인들은 정확하게 보고 비판했다. 그 대부분은 그들이 생전 처음 보는 것임에도 그러했다. 아는 만큼 본다고? 아니다. 보는 만큼 안다. 아니다.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여러 인간, 계급, 민족, 나라들이 서로 이해함이 중요하다. 올봄, 그 강의를 의뢰받자마자 즉시 수락한 것은 1970년대 노동야학 이후 그런 수업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다. 물론 돈 없이 말..
이 기회를 빌려, 딱딱하고 인기 없는 교육개혁 시리즈를 실어준 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진심이다. 앞의 두 얘기는 사교육 문제와 대학 서열화를 다루는 국민투표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도 미쳤지. 1987년 개정된 9차 헌법은 국민투표를 신설했지만, 이 권한을 대통령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했다. 이명박 시대! 교육 개혁을 위한 국민투표를 상상하는 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참, 이 기회에 독자 여러분에게 닉 데이비스라는 사람의 라는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 영국이 학교끼리 ‘쎄게’ 경쟁 붙였다가, 어떻게 망했는지 소상히 나와 있다. 정말이지,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얼마 전에 러시아 발레단이 한국에 온 적이 있고, 그래서 그 중간에 생겨난 얘기를 좀 얻어들을 기회가 생겼다. 충격이었다. 한국 학생들..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전 커피를 좋아해요. 갓 볶은 빈을 받아먹는 곳이 있죠. 물론 에스프레소만 마셔요. 허브티도 좋아하지만요. 와인도 좋아합니다. 나중에 공부를 해서 바리스타와 소믈리에가 되는 게 꿈이에요. 참, 클래식도 좋아한답니다. 게르기예프의 반지 초연을 보러 갔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연의 티켓은 100만 원이 넘었다.) 와인과 커피를 팔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북카페를 차리는 게 장차 꿈이랍니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젠장. 더 젠장스러운 일은 내가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자기 집에 나를 데려간 그 남자는 부엌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부엌칼이라도 물고 죽었나, 하고 부엌문을 열어 보니 그는 딸기의 꼭지를 따서 반 ..
정말이지 요즘 어른들이 “요즘 애들이 문제야 …” 운운하는 소리를 듣노라면 지겨워서 으아악! 하고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 같다. 애들이 나약하다,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순수하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남녀관계에서도 조건만 따진다. … 그들이 늘어놓는 ‘요즘 애들이 돼먹지 못한 이유’는 같이 주워섬기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왕 건방진 인간으로 찍혔고 앞으로도 찍힐 김에 불어 버리자면 사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진심은, “요즘 (남의) 애들이 문제야 …”라는 것이다. 그렇게 열렬히 말하는 어른들일수록 자기 자식은 나약하고 곱디곱게 키우고, 힘든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아도 되도록 온갖 안배를 하고, 순수한 사랑이니 뭐니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무엇 하나 손해 보지도 말고 길러 준 부모님 마음에..
경제경영서를 펴내는 한 출판사 대표는 자신이 최근 ‘멜라민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멜라민을 이용해 수많은 식품을 만드는 일을 줄곧 해 왔는데 갑자기 멜라민을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니 앞이 노랗다는 이야기였다.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해 모든 기획을 진행해 왔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책 시장에서 신자유주의 철학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따라서 그동안 기획해 놓았던 책의 대부분을 폐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야 한다. 그러니 폐기해야 할 기획의 선인세를 크게 오른 환율로 당장 갚아야 하는 것부터가 난감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함정에 빠진 것이 어디 그 출판사 대표뿐이겠는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통령을 뽑아놓았지만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갈팡질팡하기만 해서 불안은 더욱 커지고..
2005년 당시 기륭전자 생산라인의 파견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받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툭하면 해고당했고, 해고방식은 무려 ‘핸드폰 문자메시지’였다. 딸아이가 교통사고당했는데 해고당하는게 두려워 잔업까지 마치고 병원에 가야 했고, 몸이 아파 견디지 못해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 갔는데도 해고당했다. 견디다 못한 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노동부는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사측이 위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500만원 벌금을 매겼다. 기륭전자는 성실히 벌금을 납부하여 법적인 의무를 다한 뒤, 노조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해고시켜버렸다. 1,200일이 다 되어가는, 비정규직 운동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기륭사태의 전모다. 법에 호소했지만 법원은 7번이나 그들이 당한 해고가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