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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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야!한국사회 / 구박 말고 희망을 좀 주세요 / 김현진

zeno 2008. 12. 3. 00:11

정말이지 요즘 어른들이 “요즘 애들이 문제야 …” 운운하는 소리를 듣노라면 지겨워서 으아악! 하고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 같다. 애들이 나약하다,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순수하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남녀관계에서도 조건만 따진다. … 그들이 늘어놓는 ‘요즘 애들이 돼먹지 못한 이유’는 같이 주워섬기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왕 건방진 인간으로 찍혔고 앞으로도 찍힐 김에 불어 버리자면 사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진심은, “요즘 (남의) 애들이 문제야 …”라는 것이다.
그렇게 열렬히 말하는 어른들일수록 자기 자식은 나약하고 곱디곱게 키우고, 힘든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아도 되도록 온갖 안배를 하고, 순수한 사랑이니 뭐니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무엇 하나 손해 보지도 말고 길러 준 부모님 마음에 흡족한 조건을 잘 맞춰서 혼인해 주길 바란다. 고이 기른 자식에게 이런 기대를 하는 게 뭐 잘못이겠는가만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존재한다. 그것은 그들이 그토록 탓하는 요즘 애들도, 그의 부모가 다를 바 없이 애틋한 마음으로 길러낸 옆집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잊고 있거나 알아도 별로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기에 그렇게 말하는 그들에게 “요즘 애들 …”이란 사실 실체가 없고 오직 자기 자녀를 제외한 거대하고 흐릿한, 이미지만으로 존재하는 어떤 모임이 된다. 그리하여 “요즘 애들 …” 타령의 실체는 사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서는 말 못하는 집단적 남 탓이다. 요즘 경공업이 문제라니까, 정말 요즘 젊은 (남의) 애들은 뭐하는 건지 … 출산율이 낮아져서 문제라니까, (남의) 딸들은 대체 뭐하는 건지 … 험한 일 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문제라던데 정말 요즘 젊은 (남의) 애들은 고생을 안 하려고 해 … 농촌으로 시집가려는 아가씨들이 없어서 큰일이라지? 정말 요즘 (남의 집) 처녀들 문제라니까 … 뭐든 남얘기 하기는 쉽다. 그러나 요즘 어른들이 그런 불평을 하면서 서로 얼굴에 뱉는 침을 자신도 모른 채 주고받는 걸 보고 있는 요즘 애들 처지에서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네 자식을 고생시켜라! 아니다 네 자식을 고생시키자! 하며 다투다가 최근에는 ‘그렇다! 없는 놈 자식들을 고생시키자!’ 하고 어느 정도는 합의에 다다른 것만 같아 없는 놈 자식으로서는 겁이 덜컥 나지만, 아예 대놓고 없는 놈 자식을 고생시키려는 각오가 투철해 있는 어른들은 진작에 알아보고 조금이나마 피해 갈 수나 있지, 정말로 걱정하는 척하면서 ‘요즘 애들 이런저런 게 문제 …’ 하고 근엄한 훈계를 늘어놓는 분들에게는 참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약간의 대안을 제시해 보자면, 일단 요즘 애들 문제라는 것은 평생 그 소리만 듣고 산 우리들로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니 “너희들 고딴 마인드로는 굶어 죽기 딱 좋다, 나 젊었을 때는 …”이라며 겁주기와 혼내기와 자랑을 제발 동시에 하지 마시고 “너무 겁내지 마라, 다 먹고살 수 있다”라고 <좋은생각>이나 <샘터>식으로 말고 구체적으로 희망을 좀 주실 것, 서울에 집칸 좀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여러분 같은 부자 아빠 갖지 못한 애들이 허둥허둥하면서 살아 보려고 애를 쓰거든 싸게는 못해줄망정 구박이나 하지 말고 좀 잘해 주시고, 아 나 참을 수가 없다. 오늘 굳이 애들 붙잡고 기어코 잔소리가 하고 싶다, 싶으실 때는 부디 만 45살 이하는 최소한 잔소리 한 시간당 5만원, 만 45살 이상은 최소 한 시간당 10만원어치 술이라도 사주고 하시길. 구박만 받다 보니 싸가지가 없어진 점도 부디 너그럽게 이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