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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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아랑은 왜

zeno 2008. 6. 15. 13:19

  p. 184

  오랫동안 박의 꿈은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여자와 손을 잡고 커다란 슈퍼마켓에서 쇼핑 카트를 밀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이 카트 안에는 여섯 병들이 맥주팩이 들어 있어야 한다.

  물론 영주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누구와도 이런 일을 해보지 못했다. 그는 많은 여자와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 여자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그가 스스로를 가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본 사람들은 의외로 그렇게 살아내는 방식들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소식(小食)을 하다 보면 양이 줄어들 듯이 인간이라는 것도 만나지 않다 보면 필요량이 감소한다. 물론 자기 연민은 금물이다. 자기 연민은 가끔이야 달콤할지 몰라도 오래 하다 보면 괴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은 에일리언처럼 숙주를 완전히 먹어치운다. 나는 바보다. 매력도 없다. 사람들은 나를 벌레 보듯 여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나를 피하지. 내가 잘하는 게 뭐 있겠어? 물론 이런 자학에는 쾌감이 있다. 문제는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잘 괴롭혀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더 가혹한 자학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자학과 가학의 화려한 탱고! 그러므로 자기 연민은 금물이다. 그저, 침묵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그리고 음악이나 일에 몰두할 것.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