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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근대적 인간

zeno 2008. 10. 31. 13:19
  한국의 중고등학교 국어 관련 수업 시간에 고전문학을 배우다보면 '평면적 인간'이라는 말을 접하게 된다. 인간의 성격이 말 그대로 평면적이라, 작품 전반에서 크게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근대 이후의 소설들에서는 인물의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언급한다. 이른바 '근대적 인간'의 등장이다.
  실제로, 오늘날 근대적 인간상은 양면의 얼굴을 모두 갖고 있다. 성공은 해야겠지만 노력은 하기 싫고, 사랑은 하고 싶지만 구속받고 싶지는 않고, 무한히 놀고 싶지만 무언가 하지 않으면 강박을 느끼고. 그래서 그/녀들의 감정 역시 양가적이다. 그러나 근대적 인간상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속성이 하나 있다.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항상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곤 한다. 때로는 비이성적 선택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점차 선택은 합리적 기준에 맞추어 이뤄진다. 그래서 그들은 예의를 지키고,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며 그에 맞추어 행동하고, 스스로를 억제한다.
  하지만 이것이 능사는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행태를 보인다. 오죽하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상정되는 근대 경제학적 인간관 역시 오늘날 행태 경제학계의 수많은 반증에 의해 부정되고 있겠는가. 게다가 합리의 유무를 떠나 어처구니 없는, 제3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사회를 휩쓸지 않았던가. '조커'라는 인물이. 근대적 인간은 다양한 성격을 갖지만, 그 행동이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근대적 인간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는 인물에게 이는 무용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일종의 상상가이기 때문이다. 이걸 '탈근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덧. 요즘 쓰는 글들이 어째 '메모' 수준의 사변적인 것들이 많다. 무언가 학문적 엄밀성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내 자신 스스로에 대한 탐구심이 그와 조응하면서 커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아직 '언어화'하지 못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