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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간에 대한 헌신, <용의자 X의 헌신> 본문

평 / Review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간에 대한 헌신, <용의자 X의 헌신>

zeno 2009. 4. 27. 16:39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나이보다 열 살은 족히 들어 보이는 늙수그레한 외모, 보는 사람의 생기마저 앗아가 버릴 듯한 음울함, 히키코모리를 떠오르게 하는 무뚝뚝함, 그야말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는 듯한 그, 이시가와. 이미 개봉한지 시간이 지난 터이고, 또 영화 자체가 초반에 용의자 X의 정체를 공개하니 여기서도 까놓고 시작해보자. 그렇다. 예상대로, 이시가미가 용의자 X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떠올린다면 그대는 인문학의 영향을 '좀' 받은 이일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시가와는 '인간'인가?

앞서 외양과 느낌을 묘사한 데서 느껴지듯이 그란 인간은 사실 일반적 '인간'의 상과 상당히 다르다. 아니, 오히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자. 과연 오늘날 인간은 정말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정말?

인간에 의한 인간의 소외가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손꼽힌 지도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저 '소외'라는 말을 들은 이 치고 자신이 그로부터 자유롭다고 말 할 수 있는 이, 과연 있는가? 아니, 저런 현학적인 말을 구태여 덧대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그대는 그대를 둘러싼 인간들로부터 항상적인 애정과 교감을 느껴왔는가?

이의 결핍을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이가 바로 이시가미다. 그의 이런 인간적 특질은 시나리오상 설정되어 있는 그의 천재성 – 또 다른 천재인 유카와와 쌍벽을 이루는 – 마저 묻히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 그를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야스코 모녀의 존재.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내 스스로가 큰 위안을 얻었기에 잔뜩 신이 나서 쓰려고 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어째 리뷰들이 다 내가 하려는 말이랑 똑같다. 좌절. 그래서 이후는 간략하게.) 영화 말미에 밝혀지는 진부한 반전은 사실 인간이 인-간이 되는 건 그만큼 사소하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다.

자, 그렇다면 '인간'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人間, 사람의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단어의 형성 과정 자체가 '독자적 개인'이 아닌 '관계적 인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사람이 아닌 '인간'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애'라는 것을 통해 단순한 사람(인간)은 인-간이 된다. 그것은 자신의 틀 내에서 완벽했던 한 명의 인간을 – 비록 그를 자살의 수렁에서 구해냈을지언정 그 때문에 살인을 하도록 만든다는 극단적인 결론을 논리적으로 도출시킬 수는 없는 –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시가미는 유카와의 문제를 푸는 데서 보여졌듯이 그의 유일무이한 관심사였던 수학에 몰두하는 것이 그를 위해서도, 인류를 위해서도 좋았을지 모른다. 인류는 또 다른 한 명의 수학천재를 맞이하야 문명의 발전을 이룩할 테고, 그는 그 나름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갖게 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그게 다인가? 문제 풀이는 사실 컴퓨터에게도 상당 부분 의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직까지 기계와 인간이 다른 이유는 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감정을 추상적 관념의 세계에서 실질적 현실의 세계로 끌어내리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래야 인-간이 될 수 있다. 타인의 눈에는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당사자의 진로가 막히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당사자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삶의 충만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의식이고 절차다. 그리고 그 바탕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분명 그대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갈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부, 명예, 지위 그리고 기타 등등. 사랑은 그야말로 잔인한 것. 하지만 그대가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설익은 낭만주의라고 비난하기 전에 한번 더 돌이켜보라. 그대는 과연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자신이 타인에게 주는/타인이 자신에게 주는 사랑으로부터 충일한 행복을 느꼈던가. 우리, 더 늦기 전에 이야기하자. 사랑한다고. 보다 더 인-간의 원형에 가깝게 다가가는 길이자, 행복에 다다르는 길. 아직 인간은 인-간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희망이 있다. 이시가미가 그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던가.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행복하자.

이 영화는 곧 히가시노 게이고가 인-간들에게 하는 헌신. 미스터리물의 외양을 입힌 휴머니티의 고백이라. 로맨틱하지 않은가.

 

사실 이건 너에게 바치는 내 마지막 연서. 오래 많이 사랑하고, 오래 많이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