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이기도 하고 알림이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보다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글 자체의 완결성을 위해 곁가지는 쳐내야 할 듯 싶어 이 정도만. 또 다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요즘의 고민은 가깝게는 한국에 돌아간 이후의 일, 멀게는 대학교 졸업의 일이다. 그리고 이 둘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이번 방학에는 참여연대 인턴을 할 생각이다. 물론 내가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못할 이유는 없지 않지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 운동'을 경험하고 싶어서. 물론 참여연대 인턴을 해야지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자격으로 각종 사회 운동의 현장에 나갈 수도 있고, 학교의 사람들과 같이 갈 수도 있고, 다른 단체를 찾아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저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각각의 경우에 대해 고민한 결과, 개인의 자격으로 나가는 것은 원하는 경험을 다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고, 학교의 사람들과 같이 가는 것 역시 '학생'이라는 신분 탓에 제약을 받게 되는 한편 뜻이 맞는 사람을 쉽지 않고, 다른 단체는 딱히 눈에 들어오는 곳이 없는 탓이다. 이 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마지막 변명이다. 사실 참여연대 같은 거대 사회 운동 단체보다는 아마 다른 소규모 단체들이 아마도 나를 조금이나마 더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런 곳에 가서 경험을 쌓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다. 다만, 전방위적 운동을 하는 곳인 만큼, 보다 다양한 측면의 경험을 쌓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혹은 '눈에 띄는' 곳에서, 즉 '양지'에서 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솔직히 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여 이 한 몸이나마 필요로 하는 곳이 계시다면 연락을 주시라. 고민해보겠다. 사실 '고래가 그랬어'도 고려대상 중 하나이다.
이 같은 생각은 이 곳에 와서 굳히게 된 것이다. 애초에 공식적으로는 '경제학'만을 공부하여야 하지만, 수업과 관련하여 경제학에 들이는 시간 만큼이나 90년대 한국 소설을 읽고 있고, 최근 장하준이나 우석훈 등의 대중 경제학자들이 쓴 한국 관련 경제학 서적에 파묻혀 있다. 그러면서 굳히게 된 생각은 나의 관심사는, 내가 하고자 하는 공부는 결국 '2009년의 한국'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 그것이 '해방'이 될 수도 있고, '혁명'이 될 수도 있고, 단순히 '상아탑'에 갇힌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한국'이라는 열쇳말이 최고의 관심사다. 그리고 이를 공부하기 위해서 보다 사회를 몸으로 대면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오랜만에 일종의 학문 공동체 - 버클리 자체가 대학 도시이고, 기숙사에 살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항상 공부를 최고의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을 보다보니 나도 자연스레 한국에서보다 공부랍시고 들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 에 들어와보니 세상과 유리된 '학교'라는 공간에 있는 이들이 분명 '사회'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다시 말해, 스스로 어줍잖게나마 학문의 틀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고, 상당 부분 관념적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 그래서 이를 조금이나마 현실적으로 교정하고자 사회에 뛰어들어보고 싶다. 물론, '공부'를 위한 행위라는 것을 전제로.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번 방학은 사회 운동 쪽에 뜻을 두어보자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 학기에는 복학을 해야 하기에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일련의 경험을 쌓은 뒤에 그 다음의 일들을 결정할 생각이다.
하지만 생각이 많은 탓인지, 또 다른 생각도 하고 있다. 사실 저 결심은 벌써 2달(!)이나 된 꽤나 묵은 거라. 지난 주부터는 조금은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청강하고 있는 '정치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그것도 '고전 이론' 쪽이 스스로의 관심사에 상당 부분 조응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 지금까지 대학원 진학을 고민했던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등의 분과학문보다 오히려 더 잘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보고자, 공부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내가 알기론 '정치경제학'이 '맑스경제학'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고, 하나의 다른 학문으로 정착하지 못한 터이기에 이 공부를 하자면 국내에서는 하기 힘들지 싶다.
그래서 유학을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이런, 그러자니 각종 문제가 겹친다. 일단 군대. 애초에 학부 졸업을 하고 국내 대학원에 붙어 놓은 뒤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싶고, 또 국내에서는 여건이 마땅찮다고 생각되니 바로 유학을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 대학원은 국내처럼 붙은 뒤에 군대에 간다는 것이 관습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말인 즉슨, 학부 졸업 이전에, 혹은 졸업 직후에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 이는 곧 군 생활을 하며 유학 준비를 해야 하거나 제대 뒤에 유학 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군대' 자체도 문제다. 조금이나마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어서 최대한 일반 군 복무는 피하고 싶다. '양심적 병역 거부'도 고민하고는 있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힘들 것 같다. 나는 이만큼 비겁하다.) 그게 생각만큼 쉽지도 않고, 말 그대로 '시간을 버리는 일'처럼 여겨져 정말 거대한 골칫덩이가 아닐 수 없다.
일종의 타협책으로 다시 국내 대학원 석사를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과에 가야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한국 경제학계 내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고 - 2008/12/03 - [저널 / Zenol] - [기고]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 인사이더 를 참고하라. - 정치학과에 가자니 학부를 다니며 지금껏 들은 수업은 정치학 원론 하나가 전부고, 역사학과나 사회학과에서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아니라 지도교수를 잘 찾아야 한다. 결국, 꽤나 어렵다는 결론. 그리고 한국 대학원의 상황이 외국보다 공부하기에 열악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스스로의 한계를 뚜렷이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 예를 들어, 논리적 사고에 취약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 곳에 온 뒤 꽤나 열심히 읽게 된 한윤형의 글을 읽으며 자주 논리를 따라잡지 못함을 느끼고 있고, 조금만 고차원적인 논리 전개를 하는 글을 보면 헤매기 일쑤다. 지난 학부 생활 동안 지적으로 게을렀던 결과다. 그래서 든 생각이 기초 논리학 공부부터 다시 해야겠다는 것. 이런 상황을 백안시하고 모래성 같은 학문을 쌓아봤자 오래 가지 못하고 무너질 게 뻔하다. 같은 맥락에서 철학 역시 고민의 대상이다. 사실 하고자 하는 공부가 철학으로부터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문이라는 것 자체가 철학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기에 철학적 기초를 쌓지 않으면 논리학의 결여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게 자명하다. 이렇게 따지고 들다보니 결국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겠다는 슬픈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 마음을 다 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근대적 이성을 상당 부분 추구하겠다고 한 이가 이런 자명한 진로를 앞에 두고 외면한다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그래서 Back To Basic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아, 슬프다. 당장 지금 이 곳에서 하는 공부도 헤매고 있으면서 - 예를 들어, 당장 내일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고, 그 다음날 있는 시험 역시 절망하고 있는 와중이다. - 이런 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난관에 부딪히다니. 그래도 아무 생각 없는 것보다는 낫지 싶지만, 언제나 현실은 냉혹하다. 혹여 공부를 하려는 이가 있다면, 부디 이런 후회는 하지 않도록 미리 미리 기초 작업을 잘 해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