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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 인사이더

zeno 2008. 12. 3. 19:03


  미국의 경제학자 배리 아이켄그린은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된 『글로벌 불균형 - 세계 경제 위기와 브레튼우즈의 교훈』이라는 근간에서 글로벌 불균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이라도 한 듯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강조한 바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문장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이를테면 오늘날 한국 경제학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균형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한국의 경제학은 ‘산업정책’으로 대표되는 관치경제학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이것이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외부로부터 유입된 신자유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97년 이전에도 한국의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수학한 미국의 흐름을 따라 신자유주의적 금융경제학이 확산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기타 조류는 모두 ‘비주류’로 몰리며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 경제학계 내의 기형적 상황은 1980년대 말 박현채가 제창했던 ‘민족경제론’이 그의 사후 사실상 명맥이 끊기고, 케인즈주의 역시 외환위기를 겪으며 세력을 상실한 뒤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실제로, ‘비주류 경제학’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을 마르크스경제학은 물론이고 제도경제학 역시 한 젊은 학자가 신자유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방부에 의해 ‘불온’ 학자로 몰리는 것이 실상이다. 영국의 캠브리지대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세계적인 제도경제학자로 부상하여 고국의 모교로 돌아오려 시도하였지만, 결국 임용 심사에서 기존 학교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주류 경제학’의 카르텔을 뚫지 못하고 좌절하였다. 국방부에 의해 ‘불온서적’ 저자로 분류된 그의 가족적 배경이 지극히 ‘우파적’이라는 현실은 실소를 머금게 만든다.
  상황은 대표적인 비주류경제학인 마르크스경제학에게도 좋지 않다. 한국의 마르크스경제학계는 재야나 각종 사회운동 단체 내 뿐만 아니라 서울대와 경상대 등을 제도적 기반으로 그 세가 기울기는 하나 꾸준히 역량을 비축해왔지만, 서울대 내 유일한 마르크스경제학 교수의 퇴임 이후 학문적 후임 임용에 대한 학과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맥이 끊겼다. 결국 그는 성공회대의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을 지속하고 있고, 이외에도 각종 연구기관에서 여러 소장 학자들에 의해 학풍이 면면히 유지되고 있다.
  이외에 주류 경제학 내에서도 경제학설사나 경제사 분야가 점차 기울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 내에서 ‘경제학설사’ 분야는 현 담당 교수가 퇴임한 이후에는 마르크스경제학처럼 후임이 끊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사 분야 역시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발 ‘수리경제학’ 흐름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오늘날 한국 경제학의 상황은 학계 뿐만 아니라 정재계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헤게모니’를 쥔 ‘주류 경제학자’들이 나름의 학문 연구를 하고는 있지만 미국의 이론을 ‘수입’해오는 수준에 그치는 한편, 자신들을 제외한 각종 비주류의 의견에 귀를 닫고 무시함으로써 헤게모니를 공고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최근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와 연계된 한국의 경제위기에 대해 ‘참회록’은커녕 분석과 대안을 제시한 ‘주류 경제학자’가 있던가. 케인즈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계에서는 일부 의견에 제시되고 있지만 현실 권력이 없는 이들의 말은 ‘응답 없는 외침’에 그치고 있다.
  경제 현실을 다루는 학문인 경제학은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주류 경제학이 과연 현실에 발 딛고 실시간적인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고, 또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 학문이라면 철저한 현실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다양한 시각에 따른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 내부에서도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시장 논리에 충실하여 학문의 근간인 역사를 배제하고 수학적 기법에 의존한 금융 쪽에 천착하고 있는 현재 한국 주류 경제학은 지나치게 스스로를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제학이 진정으로 ‘경세제민’하는 학문이라면 마땅히 ‘학문의 완전경쟁’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주류 경제학의 ‘독점’ 상황처럼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