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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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영원한 사랑

zeno 2008. 11. 8. 22:01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고, 부모님 아는 사람인데, 집 근처 호텔에서 한다기에 마침 스테이크가 먹고 싶던터라 냉큼 쫓아갔다 왔다. 대략 1년 만에 결혼식이라는 예식에 갔더니 뭔가 낯설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제 내가 이런 곳에 많이 다니게 될 날, 즉 내 또래의 주변 사람들이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돌릴 날도 머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 내일 모레면 스물둘이니 빠르면 5년 뒤? 쯤부터 꽤나 자주 다니게 될 것 같다.
  한국에서 유독 화려하게 하는 결혼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각설하자. 워낙 진부한 내용이니까. 결혼 자체도 할지 말지 모르겠지만 - 당연히 지금 할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평소 생각에 결혼이라는 걸 꼭 해야 하나. 그냥 마음 맞는 사람끼리 동거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다. - 굳이 식을 거창하게 비싼 돈 들여가며 해야 하나 싶다.
  그냥 오늘 식에 가 있는 내내 귀에 들어왔던 게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이었다. 주례가 목사였는데 어찌나 강조하던지. 그런데 과연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 요즘 천착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때마침 <아내가 결혼했다>가 개봉한 터라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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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많이 달라질 수 있겠다.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생물학적 성을 떠나서 양자가 서로를 아끼고 생각하며 단순한 우정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는 상태, 정도라고 해보자. 극단적인 상태라면 '죽고 못사는 상태'일거고, 보다 잔잔하다면 '마음 편하게 상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계에 돌입한 연인들은 '불 같은' 시기를 겪는다. 항상 보고 싶고, 항상 생각 나고, 항상 무언가를 해 주고 싶고, 항상 무언가를 기대하는. 하지만 그 시기는 - 물론 편차가 있지만 - 영원하지 않다.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몇년. 평생 가는 건 없다. 만약 자신들의 사랑은 그렇다고 한다면, 거짓말 하지 말라.
  결국 고저등락을 겪게 되고, 위기를 몇 번 맞다가 깨지고 하는 것이 사랑이다. 어떻게 사람이 한 사람만 보고 살 수 있을까. 당장 눈을 들어 한 바퀴 휙 둘러보면 얼마나 유혹이 많은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사랑의 위기가 시작된다. 내 스스로 은밀한 욕망을 갖는 것을 책망하는 것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던가. '자기, 그 남자/여자 왜 만났어?'
  불신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절망적인 공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로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기 위해서 먼저 말한다. '우리, 그만 하자.' 그 결과, 좀 더 사랑했던 쪽은 매달리고, 고통받는다. 사랑은 가장 원형에 가까운 양자간의 권력관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랑이 권력관계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말라. 당신, 예전에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속에 상대 때문에 혼자 힘들어했던 적이 없던가? 상대는 나만큼 힘들어하지 않고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억울하고, 화나고, 밉지 않던가? 왜 이렇게 스스로가 바보같은지 끊임없이 자책하고, 슬프고, 무기력하고, 심지어 죽고싶기까지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대에 대한 미련, 아스라함, 얼굴만 봐도, 저장된 문자만 봐도 떠오르는 가슴 벅참과 슬픔 때문에 더욱 괴롭지 않던가?
  다 상대에 대한 집착, 즉 소유욕 때문이다. 많은 문필가들이 말했지만, 사랑은 결국 자신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인간이 택하는 현실도피의 일종이다. 자존감으로 충만한 이는 쉽게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도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상대에 대한 욕망을 불태우는 것은 그에 비례한 다량의 재만을 남길 뿐이다. 애초에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상처도 덜 받게 되고, 오히려 객관적으로 상대에게 충실할 수 있다. 내 것이 아닌데 어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상대를 소유하기 보다는 공존해야 한다. 상대가 어느 정도 홀로 서 있고, 나도 어느 정도 홀로 서 있을 때 서로가 각자의 외로움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을 때 비로소 둘의 관계는 보다 견고하면서도 지속적일 수 있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구속되지 않는 것 - 물론 이 수갑은 '더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쪽이 채우는 것이지만 - 이 사랑을 그나마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런 사전적 교감 위에 생긴 감정적 유대가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테니까.
  하지만 이 관계도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다.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얼마나 유혹이 많은지는. 한 쪽의 감정이 식는다면 - 불타오르는 번개탄이든, 은은하게 타는 연탄이든, 잠시 밝게 자신을 희생하며 타오르는 촛불이든, 편리하게 키고 끌 수 있는 가스불이든, 모든 불은 결국에는 꺼진다 - 다른 한 쪽의 노력으로는 여간 그 불꽃을 다시 살리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우를 범한다. 상대에 대한 소유를 타의적으로 멈출 수 없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 끝은 대체로 양자 모두에게 불우하다. 격하게 싸우다가 '남'으로 헤어지고, 상대를 저주하고, 미워하고, 상대와의 기억을 지우고, 상대를 '죽은 사람'으로 치부하고 여타 등등.
  과연 그게 좋은 걸까.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니. 자기 부정이다. 상대를 미워한다니. 그토록 상대를 사랑한다던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모독이다. 그 상처, 아픔 모두 끌어안고 가야 하지 않을까. 지난 순간동안 당신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 역시 당신을 온몸으로 아꼈다. 다만, 그 시간이 끝났을 뿐이다. 서로 좋게 헤어지는 것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로 남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물론 힘들다. 하지만 이는 결국 헤어짐의 원인을 상대에게 찾기 때문이다. 왜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가. 생각해보라. 약속에 단 한순간도 늦은 적이 없던가? 별 생각없이 뱉은 말로 상대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내지 않았던가? 상대가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관계를 지속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책임은 자기에게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들 그런 사실을 외면하곤 한다.
  그 기억을 끌어안자. 과거에서 사는 것은 사람을 침잠시킬 뿐이고, 미래에 사는 것은 현실 도피에 불과하다. 현재에 살자. 과거의 좋은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현재 행복하면 된다. 혹시 당신 주변에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가 있지 않은가. 당신 눈에 번쩍 들어오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새로운 용기를 내면 된다. 조금 더 다가가보자. 상대는 아마 원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와 주기를.
  그런 의미에서 결혼은 끔찍한 제도다. 한 사람이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잔학한가. 그렇다고 손예진처럼 결혼을 여러번 하면 될까. 현실적으로, 그건 너무나 힘들다. 차라리, 쿨하게 결혼 없는 동거가 어떤가. 스스로 결혼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쓸 바에야 편하게 사랑하며 동거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한국이라는 사회 내에서 그 차별적 시선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대, 남들 이목에 신경 쓰기 위해 사랑하는 것인가? 그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왜 용기를 내지 못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연인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다. 굳이 결혼하고 싶다면, 하라. 하지만 무한책임은 그대 스스로 지라. 평생 상대만을 사랑하겠다는. 자신이 없다면, 상대를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서로의 자유와 미래가 열려 있는 동거를 택하자. 대신 현재의 상대에게는 충실하자. 불타는 사랑, 의지만 있다면 지속할 수 있다. 외로운 사람들, 어찌 사람이 다가오는 데 싫다고 하겠는가. 가을, 누구의 말처럼,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영원할 수는 없더라도, 현재 그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랑, 이 가을에 마음껏 하자. 그대는 아직 젊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