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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플라톤, <국가>

『국가』 세미나 첫번째 쪽글

zeno 2008. 6. 25. 18:47
  안녕하세요. 글로 처음 인사드리게 됐네요. 조홍진이라고 합니다. 이번 짧은 글의 초점은 왜 제가 플라톤의 저작 『국가』를 읽고자 이 세미나에 참가하였는지에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전 김휘수 씨의 지도편달 아래 지난 겨울 이래로 열린학술네트워크에서 ‘서양 고대 철학사’ 세미나에 참가해왔습니다. 그런 세미나가 다행히도 반년 가량 지속되어온 본 세미나는 좌초 위기도 많았지만, 여태껏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드디어 플라톤, 그것도 『국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세미나에서 플라톤의 저작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 『메논』 ․ 『크리톤』 ․ 『파이돈』 등 여러 편을 시범 경험 삼아 읽었었지요. 그래서 저는 이런 유의미한 세미나가 지속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며, 제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세미나에 계속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에서 주로 다루는 저작이 『국가』가 아닌 다른 저작이었다면 참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플라톤의 철학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지요. 플라톤의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내는 한 권을 꼽으라면 『국가』가 꼽힌다는 사실은 여러분도 익히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 지금껏 꼭 한번쯤은 읽어야겠다, 는 생각은 해왔지만, 역시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어렵더군요. 하지만 모처럼 이런 좋은 기회가 온 이상 - 자발적으로 참여한 세미나에서 벌금제가 도입된다니! 열심히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겠지요? - 용기를 내어 시도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다루는 철학자가 플라톤이 아닌 고르기아스나 프로타고라스였다면 이렇게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그랬다지요? 지난 2천 년간의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불과했다고. 그만큼 플라톤이 서양 철학에서 갖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을 읽고자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철학아카데미의 이정우가 그러지 않던가요. 서양철학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신족’과 니체가 주도하는 ‘거인족’의 투쟁이라고. (뭐, 그렇지만 그 분의 책은 읽지 않았습니다. 뭔가 꼬꼬마처럼 아는 말 중 그럴듯한 말을 나열하는 것 같아 부끄럽네요. -_-;) 그렇다면 니체를 알기 전에 플라톤을 먼저 알아야겠지요.
  그렇다면 왜 서양철학을 공부하려는가를 이야기해야겠네요. 사실 2008년의 한국 사회를 100년 전의 한국과, 현재의 미국과 비교해 봤을 때 어디가 가까울지 생각해보면, 미국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유럽에 그 정신적 ․ 문화적 뿌리를 두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은 구미라 불리며, ‘서양’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서양의 정신 세계 기저에는 ‘철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 관심사가 2008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것인 이상,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양 철학을 공부해야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지요.
  이제 글을 마칠 때가 됐네요. 사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이 자식, 이거 1페이지 채우려고 주저리주저리 헛소리만 늘어놨군’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쓰려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이 정도밖에 토해내지 못하겠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글의 서두에서 밝혔던 플라톤의 『국가』세미나에 참여한 이유는 이상의 잡설들로 어느 정도 해명이 되었을 것 같아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언제나 비판은 환영합니다.
  덧. 사실 두껍디두꺼운 이 책을 읽는 모임에 참가하게 된 것은 ‘간지난다’는 욕망에 충실한 행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래도 안 읽는 것보다는 낫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