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7 년 3 월 제 83 호 / [새내기 특집] '그날이 오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녹두거리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본문

저널 / Zenol

2007 년 3 월 제 83 호 / [새내기 특집] '그날이 오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녹두거리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zeno 2007. 9. 7. 23:48

조홍진 기자 / zeno@snu.ac.kr

봄이 성큼 다가온 듯 따뜻해진 2월말, 지난 겨우내 잠시 학교를 떠나 있던 관악인들은 07학번 새내기들을 맞이하러 학교로 돌아왔다. 동시에 녹두거리는 잠시 잃었던 활기를 되찾아 새맞이 행렬로 북적인다. 그러나 녹두에 남은 마지막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이하 ‘그날’) 앞은 스산하다. 헌내기들이 새내기들에게 속표지에 짧은 편지를 쓴 책을 건네주기엔 2월이 아직은 이른 탓일까, 아니면 그런 전통이 사라진 탓일까.

 

녹두거리에 남은 유일한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대학생들이 보다 자유로워졌으면

“지금까지는 주어진 것을 쫓아가기만 하는 틀에 갇혀 있었지만 앞으로는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또 자기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기를 바래요. 예전에는 대학이 자유롭게 해주는 공간이었지만, 요즘에는 대학에서 학부제도 시행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해주는 그런 계기가 별로 없어요. 하지만 학생들이 기성사회의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 목을 매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조건을 파악하고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었으면 해요.”

새내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더니 '그날' 주인 김동운 씨는 이렇게 답한다. 요즘 세상에 쉽게 듣기 힘든 말이다. 전국 각지에 대형 서점 체인들이 들어서고 책과 지식이 단순히 ‘상품’처럼 여겨지고 마는 오늘날, 학생들의 영혼을 살찌우는 데 도움을 주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꿋꿋이 지속되는 ‘그날’의 존재가 소중하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김동운 씨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오래 가는 '그날'

지난 87년, 전국 각지에는 150개가 넘는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이 6월 항쟁을 비롯한 여러 사회 운동의 이론적 바탕이 되고 있었다. 관악 주변에도 '전야', '열린글방' 등 네댓 개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이 있었다. 상당수의 07학번 새내기들이 태어난 1988년 초 시작된 ‘그날’은 ‘후발주자’인 셈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라는 세계사적 대변환과 이어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출현 등은 대학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 대학 문화를 급속도로 바꿨다. 그리고 80년대까지의 거대담론이었던 정치·군사·경제 등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이 점차 문화·성·환경 등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문제들로 옮겨가면서 다양성의 가치가 대두됐다. 또한, 소위 ‘운동권’과 그들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그들의 이론적 바탕이 된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설 자리를 잃어 갔다.

전주인의 유지를 이어받아 아내와 함께 ‘그날’을 운영하던 김씨는 인문사회과학 도서에 대한 수요가 줄고, 덩달아 서점이 문을 닫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그날’을 현재 ‘그날’ 자리인 ‘전야 서점’으로 확장 이전하는 용단을 내렸다. 결과는 좋았다. 90년대 중반에는 기존 전야 서점과 ‘그날’의 매출을 합한 것 이상의 매출이 나왔다. 덕분에 97년 말에는 10주년 기념행사로 서평 공모대회도 열고, 98년에는 ‘그날에서 책 읽기’라는 자체 잡지도 발행했으며, 유명 저자와의 대화 시간도 갖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벌였다.

같은 해, 현재의 ‘그날’ 2층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나래를 편다’라는 카페를 열기도 했다. 점차 학생들의 관심이 인문사회과학에서 멀어지면서 사라져버린 녹두거리의 세미나 공간을 부활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시도는 김씨 스스로 “물길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노력이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이었지만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무료 배부였던 ‘그날에서 책읽기’와 2000년대 들어 이용률이 떨어진 카페가 그나마 재정 상황이 좋았던 서점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결국, 현실적 조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1999년 12월 제17호를 마지막으로 ‘그날에서 책읽기’의 발행이 중단되었고, 2004년 말 카페 역시 문을 닫게 되었다.

 

'그날'의 역사를 회상하는 김동운 씨

90년대 말 들어 학생들의 관심 저하와 IMF 외환 위기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학교 주변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문을 닫거나 종합 서점으로 바뀌었다. '그날' 역시 계속 운영이 악화돼 작년 6월 경 한계에 달했다. 이후 ‘그날’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그날'의 단골이었던 90년대 초반 학번대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후원회 논의가 시작되어 후원회가 지난 9월에 공식적으로 발족됐다.

‘그날’의 부활을 위한 노력에는 재학생들도 힘을 모았다. 작년 가을 언론정보학과 영상제에서 ‘그날이 오면’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됐고 자발적으로 후원회에 가입하는 학생들도 생겨 났다. 12월에는 법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신영복 씨의 ‘그날’ 후원 강연이 열리는 ‘그날’의 부활을 위한 노력은 다각적으로 이뤄졌다.

'그날'의 미래는 '현재진행형'

작년 한 해 동안 후원회 설립과 관련해 여러 언론에서 ‘그날’을 조명하고, 후원회원들이 갹출한 후원금이 모이면서 운영 상황이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외연이 확대된 형태로 서점 이상의 종합 기능 공간'이라는 김씨의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하다. 한편, 선배의 권유로 후원회에 가입했다는 오유교(정치 06)씨는 “지금 체계로는 신입 회원 유인이 없다. 도서 추천 목록을 제공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며 '그날'의 미래를 위한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김씨는 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3월경 인기 저자의 새내기 대상 강연을 구상중이다. 또한, “‘그날에서 책읽기’를 웹진 형태로 구현해 서평 및 책 추천 등으로 소박하게 시작하여 점차 예전의 모습으로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홈페이지(http://www.gnal.co.kr) 등을 통해 새내기들과의 인연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인문사회과학과 대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진지하게 말하던 김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그날’에서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 아저씨가 새내기에게 권한다! 추/천/도/서/

 

'그날' 아저씨 김동운 씨가 새내기들에게 추천한 책 5권

①<전태일 평전>, 조영래 | 돌베개

제도권 교육 안에서 잘 다뤄지지 못하는 노동 문제, 성장우선주의 등 한국 사회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잘 담아낸 책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책이다. ‘그날’이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②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 교양인

'그날'의 작년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한 책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호기심에 책을 펴든 독자에게 인권, 사회모순의 문제까지 환기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페미니즘의 여러 조류 가운데서도 저자만의 독특한 문제의식이 치열하한 고민으로 쓰여졌다. 저자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도 서술 상의 접근 방식이 좋아 읽어볼 만하다.

③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 책벌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찬찬히 알려준다. 애초에 노동자들을 위해 쓰였던 책이라 이해하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아 새내기들이 읽어볼 만하다.

④ <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 한겨레출판

기존 한국 사회와 다른 사회에서 성장했기에 오히려 한국 사회에 객관적이고도 애정어린 비판의식을 보이는 책이다․ 숲에서 떨어져야 숲이 제대로 보이듯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격한 러시아 태생의 저자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많다.

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 돌베개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떠나 개인의 내면과 주변인에 대한 태도,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등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이 녹아들어가 있는 좋은 책이다. 갓 입학한 새내기들이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되는 시점에서 깊이 있는 인식과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데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