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좋아해 본문

저널 / Zenol

좋아해

zeno 2007. 9. 1. 22:30

  '나 너 좋아해'라는 말은 쉽게 하지 말지어다.
  고백은 일상적이다. 정치인의 정치 자금에 대한 고백, 성당의 신부에게 하는 고해 성사,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는 사랑 고백. 그 중 내가 그나마 접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백은 맨 후자다. 이 고백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순간 격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갑자기 심장이 두 배 쯤 빨리 뛰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어찌해야할지 모를 당혹감을 느끼게 하고, 입이 착착 말라붙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 고백이 서로간에 좋은 결실을 맺는다면 다행이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고백은 새드 엔딩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창 기숙사 내에서의 메이트들과의 불편한 동거, 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과의 뻘쭘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17세. 그 해 가을, 갑자기 어느 소녀가 '귀엽다', '살인미소다', '착하다' 따위의 미사여구를 남발하며 반에서 공공연히 내가 들을 수 있게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관심했다. 아니, 사실 어쩔 줄 몰라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은 생소했을 뿐더러 평소에 껄끄러운 관계를 지속해오던 소녀였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 소녀는 내게 직접 '좋아해'라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심장이 뛰었다. 얼굴이 달아 올랐다. 당혹스러웠다. 그러자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다. 가만히 있을 때 갑자기 그 소녀 생각을 하게 되고, 만약 사귀면 미래에 어떻게 될까 공상에 빠지게 된 것이다. 며칠 후, 그 소녀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갑자기 얼굴이 굳었다.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밤, 전화가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그저 장난이었다고, 애들이랑 장난 친거였다고. 왜 오바하냐고.
  희망이 부서졌다. 다시금 음울해졌다. 상처입었다. 그렇게, 난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열일곱 때, 다시 한번 이성의 '장난감'이 되었다. 끝없는 좌절로 빠져들었다.
  '나 너 좋아해'라는 말은 쉽게 하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