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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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소매치기

zeno 2007. 6. 23. 23:52
  어제 종로 한복판에서 소매치기를 맞닥뜨렸다. 보통 소매치기는 '당했다'라고 표현들하는데 나는 왜 '맞닥뜨렸다'라고 했을까? 말 그대로 맞닥뜨린 후,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은 막아냈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러하다. 어제 급조된 만남을 위해 종로에 갔었다. 상대를 만나기 위해 급히 길을 걷던 도중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한 여성이 고의적으로 어깨를 부딪혔다. 그러더니 종로3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거였다.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상대가 기다리고 있기에 잘 모른다고 하고 가려는데 이상하게도 상대가 갑자기 서울 분 아니시냐며, 여기 초행이시냐며 말을 붙여 왔다. 마음이 급한 나는 약속에 늦었다고 빠져 나오려고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런데 갑자기 혹시 공대 다니지 않냐며 괴상한 말을 끌어대며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하였다. 이상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느껴지던 찰나, 하방 15도 가량을 향하던 내 시선에 그녀 옆에 있던 일행인 또 다른 여성의 손이 내 주머니를 향해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어이쿠, 잘못 걸리셨지, 바로 시선에 걸리시다니. 그래서 나야 뭐 당연하게 조건반사적으로 그 손을 쳐냈다. 평소 같았으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경찰서나 주변 지구대에라도 갔을지 모르나 바빠서 그냥 그런 짓 할 시간에 돈이나 벌라고 말하고 빠져 나왔다. 그렇게 얼빵한 소매치기들이 있을 줄이야.
  괴상한 경험이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도 아니고 맞닥뜨리는 것에 그치다니. 사실 그 때 지갑에는 달랑 천원이 있었을 뿐이라 털려도 카드만 정지시키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안 당한게 더 좋은게지 뭐.
  혹시나 이 글을 보신 소매치기 님들, 그렇게 어설프게 굴지도 마시고, 아예 하지를 마세요. 이게 얼마나 개쪽입니까. 차라리 그런 방법 연구할 시간에 그 머리로 다른 좋은 일 해서 돈 벌 생각이나 하세요. 진짜 남 등쳐먹으면서 돈 번 사람들 돈은 엄두도 못내고 살기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그렇게 털어가는 거 얼마나 쪽팔리는 일입니까. 그러지 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