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여자들 본문

저널 / Zenol

그녀의 여자들

zeno 2010. 10. 3. 23:16

그녀가 죽었단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어느 날 홀연히 떠났단 이야기를 그녀의 여자에게서 전해 들었고, 어쩌다 보니 자리 잡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또 다른 그녀의 여자로부터 들었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그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었다니. 그건, 그럴 수 없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에서였다. 한참동안의 방랑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동아리 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신입생은 아니랬다. 그러면서도 화사한 옷은 의구심을 자아냈다. 대답은 의외였다. 교환학생이란다. 그것도 바로 옆 학교에서 온.


그랬다. 강북의 대학 밀집 지역에 있는 대학 중 한 대학이었던 우리 학교는 여대였던 옆 학교와 학생교류협정을 맺고 있었다. 늘 옆 학교가 궁금했다던 그녀는 그래서 가을을 맞아 우리 학교로 건너온 터였다. 게다가 마침 자기 학교에는 없는 동아리이기도 하고, 학교가 가까우니 돌아간 뒤에도 놀러오는 것이 무리 없겠다 싶어 남자들이 득시글한 이 동아리를 선택했다고 했다. 의외였다.


그녀는 나를 따랐다. 처음에는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것을 묻는 듯 하더니 점점 그녀는 내게 노골적으로 다가왔다. 차츰 둘이 있는 시간이 생겨나고, 스킨십이 시작됐다. 애인이 있었지만, 딱히 그런 것을 꺼리지 않는 나였기에 그냥 내버려뒀다. 아무도 우리 사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일이 벌어졌다.


“언니, 언니는 내가 좋아요?”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너 심심하냐?”

“아니, 알면서 왜 모르는 척 해요. 우리 같은 쪽이잖아.”

“뭔 소리야. 같은 동아리란 거냐?”

“됐어. 아, 재수 없어, 정말.”


사실 알고 있었다. 연휴가 끝난 뒤 고향에서 양주를 가져왔다며 나를 방으로 부른 그녀는 그날따라 거나하게 취했다. 나 역시 얼큰하게 취한 터라, 집에 돌아가는 대신 그녀 방에서 잠을 청했다. 늘 그래왔듯이, 나는 그녀의 침대에 누웠고, 그녀는 바닥에 요를 깔고 누웠다. 그런데 새벽이 되자, 그녀는 침대로 올라와 내 옆에 누웠다. 그러더니 나를 안고 몸을 부볐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고, 그렇게 뜬 눈으로 새벽이 지나갔다.


그 날의 대화 이후 그녀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동아리 방에도 나오지 않았고, 당연히 학교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소식은 알 수 있었다. 화사한 옷을 즐기던 그녀와 그녀의 동행녀들에 대한 소식은 소문을 통해서도 들어왔고, 두 대학이 한 역을 공유하던 탓에 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여자가 내게 그녀가 떠났단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니 확신할 순 없었지만, 역에서도 볼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은 점차 그 전언을 사실로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또 다른 그녀의 여자로부터 그녀가 자리잡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약간은 의외인, 그런 정착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그녀가 죽었단다. 믿을 수 없었다. 떠난 것부터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니 그저 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참을 수 없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녀의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그녀와 그녀의 여자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었다. 주먹이 쥐어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나서서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서서 그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순간, 그녀는 사람들이 바라는 그녀가 되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나서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녀와 보낸 밤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