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강, <철길을 흐르는 강> 본문

저널 / Zenol

한강, <철길을 흐르는 강>

zeno 2009. 3. 30. 12:38
 ..... 사람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해. 몇십 년이 걸릴 것 같지? 최소한 오륙 년은 걸릴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이삼 년이면, 빠르면 육 개월이면...사람에 따라서는 집중적으로 두세 달이면 끝나. 어떻게 하느냐면, 그를 바쁘게 하는거야. 당장이라도 천년 동안의 잠에 곯아떨어지고 싶어할 만큼 피로하게 하고, 그러나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게 하는 거야. 쉬더라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주 조금만 쉬게 하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굴욕당하게 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수백만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도시, 수백만의 피로한 인간들을 뱉어내는 도시에 대한 영화야. 제목은 '서울의 겨울'이라고 붙이겠어. 겨울뿐인 도시.....
  친구의 블로그에서 이런 인용구를 보았다. 아, 오랜만에 소설에서 이 정도 수준의 통찰을 보았다. 피로, 굴욕, 증오의 메커니즘. 그토록 벗어나려고 노력하면서도 아직껏 자유롭지 못한 악마적인 연속. 어쩌면 평생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 사람 냄새를 잃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