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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투표를 부탁드립니다.

zeno 2008. 11. 17. 00:40


  관악의 학우들께.

  어느덧 학교 내 투표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몇 주간의 선거운동 기간이 끝나고 이제, 각자의 권리를 행사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지요.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사회대 선거는 오늘, 그러니까 11월 17일 월요일부터 시작되고, 총학생회 선거는 내일, 11월 18일부터 시작됩니다.
  벌써부터 이곳 저곳에서 무산을 우려하는 혹은 점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수십명의 선거운동원들이 학내 여러 곳에서 홍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담론이 형성된 낌새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과대 학생회 혹은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극히 진부해진 말이지만, 학생 사회는 죽고, 자치는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학생 사회와 자치가 왜 중요할까요. 사실 졸업하고 나면 그만일 수 있는 학교이기에 우리 각 개인에게 학생 사회나 자치는 지구 반대편 소말리아에서 오늘 한국인 선원 5명이 납치되었다는 소식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보통의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최소한 한 끼의 밥은 먹게 됩니다. 특히, 요즘처럼 자장면 한 그릇이 4천원이나 해서 시켜먹기 부담스러운 때일수록, 17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학생회관의 밥은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요즘 생활협동조합이 싸게 식사를 공급할 수 있는 원천 중 하나인 저렴한 임대료 - 무료이던가요? - 를 징수하도록 하는 법안이 상정되었다고 합니다. 현재처럼 학내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학생들의 담론이 하나로 형성되지 않는 시국이라면 아마 그대로 통과되겠지요. 그렇다면 벌써 밥값이 최소 500원은 인상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이미 생협측에서는 다른 사업에서 얻은 수익으로 식당 사업의 손해를 벌충하고 있는데, 임대료가 갑자기 인상된다면 어쩔 수 없이 음식 값을 올릴 수 밖에 없겠지요. 생협도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문제에 학생들이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학내 정치를 부활시켜, 자치에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인데, 우리가 해결하지 않는다면 누가 해결해 줄까요? 우린 이제 더 이상 어머니, 아버지 아래에서 삶의 상당 부분을 의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성인입니다. 우리의 문제, 우리가 해결해야 하지요. 그리고 우리 각 개인은 약하디 약하지만, 우리가 하나로 의견을 모은다면, 그것은 공허한 목소리가 아닌 힘이 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서울대'라는 이름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성과 실제적 권력을.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다수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행히도, 500여 일의 투쟁 끝에 이랜드 사태는 조금이나마 해결되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지만, 여러 사람은 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에게는 '학생 사회'라는 우리의 사회가, '자치'라는 우리의 주권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내에 학생 사회는 붕괴했다고. 자치는 벼랑 끝에 몰려있다고. 하지만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항상 갱신되지 않으면, 죽고 마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구성원, 즉 인민의 존재와 주체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직접 자치에 나서지 않으면, 학내에 민주주의가 설 곳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미 보시지 않았습니까. 부담자인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등록금을 올리는 본부의 행태를, 학생들의 여가 공간과 주거 공간보다 외부 자본의 침투를 우선시하는 본부의 행태를. 이에 맞서 우리의 권리,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나서는 것 뿐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가장 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대표체인 학생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학생회는 결코 우리의 '대리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손으로 뽑아 우리를 위해서 일하는 '대표자'입니다. 그 말인 즉슨, 그들에게 주권을 위임한 우리로부터 학생사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학생회는 이를 위해 '윤활유'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활에 집중하고 있을 때, 학생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활을 일부 희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의제는 결코 민주주의의 본질, 이상이 아닙니다. 현실적 타협점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는 도리어 민주주의의 바탕을 갉아먹을 수 있는 위험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조금이나마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 대의제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든 이에 대한 모든 이의 자치,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어 볼 수 있겠지요.
  나무나 꽃의 뿌리가 한 번 말라버리면, 다시 피어오르기란, 살아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싹을 보존하고, 움트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생회를 세우는 것은 그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이 '객체'가 아닌 '주체'의 것이 되기까지 근본을 다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가혹한 현실은 우리에게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 비RAIN도 말했듯이 - 단순히 꿈꾸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루기 위해 우리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투표입니다.
  여러분, 투표합시다. 당신의 의사 결정이, 그 한 표가, 우리 생존의 싹을 틔웁니다. 당신의 뜻이 무엇이든 좋습니다. 뜻이 있어 투표하지 않는 것도 분명 당신의 뜻을 펼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우리 옆에 있는 이의 꿈이 조금 가능성이라도 맛보기 위해서는 선거의 성사가 필요합니다. 찍을 사람이 없다면, 원하는 대표자가 없다면, 기권을 하십시오. 차라리 그것이 투표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리고 끌리는 이가 있다면, 과감히 찍으십시오. 지금 당신이 그/녀들을 지지했다 하더라도, 그/녀들이 당신이 의사에 반할 경우 당신에게는 이를 비판할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일단, 우리에게는 선거를 성사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 열어가는 단초가 되니까요. 

  투표를 부탁드립니다. 부디.

2008년 11월 17일 새벽,
한 명의 유권자,
조홍진/ZENO 드림.
 

 덧. 투표는 투표소에서 가능합니다. 이는 곧 투표소를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투표소를 지킬 사람은 항상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력이 되신다면 각 선거의 선거관리위원회에 연락해 투표소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작은 노력이 우리 모두를 살립니다. 이 역시 제 작은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