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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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계의 창 / 자기 긍정감의 결여 /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철학 교수)

zeno 2008. 10. 4. 16:05


지난번부터 나는 도쿄 아키하바라의 도리마 살인사건(아무런 이유 없이 길 가는 사람을 무작정 칼 등으로 살해하는 행위)의 고찰을 계속하고 있다. 이전에는 일본의 젊은 세대가 놓여 있는 워킹푸어(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의 문제,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한 가혹한 노동환경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문제의 배경에 또하나, 일본의 젊은 사람에게 자기긍정감의 결여라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용의자인 가토 도모히로의 경우 그것은 학교와 가정을 포함한 교육의 문제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가토는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좋아서 아오모리현의 최우수 고교에 입학했다. 이 단계까지는 그가 이른바 ‘가치쿠미’(승자 그룹)에 있었다. 이 ‘성공’은 엄격하고 교육열이 높은 부모 아래 필사적으로 ‘좋은 아이’임을 연기한 결과였다.

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특히 어머니는 학교 성적에 민감해서 자식에게 완벽을 요구했다고 한다. 시험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토를 신경질적으로 비난하고, 또 ‘남녀교제는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는 등 억압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고교 진학 뒤 가토의 성적이 학년석차 300등대에서 헤매자 어머니의 관심은 가토에서 동생 쪽으로 옮겨갔다. 가토는 휴대전화 메일에 이렇게 써놓았다. “현내 톱의 고교에서 꼴찌인 나, 이미 의욕은 없음. 부모의 기대와 돈은 모두 동생에게.”

성적이 떨어지자 “부모의 기대와 돈은 모두 동생에게” 향했다는 부분에 이들 부모 자식 관계의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는 듯 보인다. 가토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성적우수라는 조건부였다. 성적이 우수한 동안에는 부모는 가토를 ‘사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가토의 ‘성적’에 대한 ‘사랑’에 지나지 않고, 가토라는 사람에 대한, 자식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무조건의 ‘사랑’은 아니었다.

부모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추는 아들만을 긍정하고 적합하지 않게 되면 부정한다. 아마 가토는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장래의 우등생이 될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를 받고, 그 한도에서만 애정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태어난 아이에 대한, 생명에 대한, 무조건의 긍정이 없다.

가토는 이것을 일찍이 눈치챘다. 그는 “부모의 이기심이 자신의 꿈을 갉아먹고 있다”는 글을 남겼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 곁을 떠난 뒤에는 “마음속으로 부모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동료의 증언이 있다.

이 문제가 가토 도모히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학교의 성적에 의해 아이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더 높은 수준의 상급학교 진학을 지상의 가치로 삼고 그것에 의해서만 아이의 장래가 ‘좀더 나은’ 생활이 보장된다는 가치관은 전후 일본의 교육을 일관해서 계속 지배해온 가치관이다. 현재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을지언정 약해질 기색은 없다.

가토 도모히로 부모의 아이에 대한 태도는 이런 사회의 가치관에 의해 양성된 것이다. 일본의 학교시스템 전체가 이런 교육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나 자신 그 정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진 도쿄대의 교원으로서 이 시스템에 관여하고 있다. 이런 교육관에 철저히 지배된 결과 일본의 교육에서는 교육의 모든 근원적 전제가 실종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전제라는 것은 즉,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존재를 타인에게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으로 인정받고 그것에 의해 자기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