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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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어른들은 왜 그래? / 김규항

zeno 2008. 6. 26. 01:07

처음 촛불시위에 다녀오던 날 “쌍절곤을 가져올 걸 그랬나봐”라고 말해 일행을 유쾌하게 만든 김건(12살 먹은 내 아들)이 며칠 전 밥을 먹다 말했다. “그런데 아빠. 어른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잖아.” “그랬지.” “그런데 자기들이 뽑아놓고 왜 이명박만 욕 해. 어른들은 왜 그래?” “그러게. 어른들은 왜 그럴까? 그런 말 하는 친구가 또 있니?” “응,  우리 반에도 여러 명.” “그래...”

촛불 시위와 광장의 열기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혹은 함께 생략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이명박 씨는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게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이다. 지각 있는 사람은 이런 경우, 말하자면 자신의 책임이 포함된 어떤 나쁜 일이 벌어졌을 경우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비판과 분노. 그러나 촛불시위와 광장에서 이명박에 대한 비판과 분노는 차고 넘치지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위대한 시민”이니 “대중의 놀라운 창발성”이니 하는 입에 발린 아첨의 소리(혹은 광장을 지도해보려는 얕은 수작)나 지껄일 뿐이다.

이명박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해서 면책된다고 생각할 건 없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원인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사실 5년 전 대선이었다면 이명박 씨는 당선될 수 있었을까? 당선은커녕 후보에서 중도 사퇴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BBK는 내 회사”라고 말하는 이명박 씨의 동영상을 보면서도 아랑곳없이 이명박을 찍었다. 이명박이 좋은 정치인이라 생각해서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뭔가 좀 짭짤하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참 더러운 이유였다.

한국인들은 대체 그 5년 동안 무슨 일을 당했기에 그 지경이 되었을까? 길게 말할 것 없이 노무현 정권이라는 ‘가짜 진보’ 정권에 신물이 나도록 당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노무현 정권은 정치적 민주화를 앞세운 일관되고 무리한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한국사회를 결딴냈다. 극소수의 부자들은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대다수 인민들은 삶이 더욱 고단해지고 미래가 불안정해졌다. 결국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 모든 게 ‘진보정권, 좌파정권 때문’이라 되뇌며 오로지 경제 문제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그가 설사 도둑놈이라 해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이명박 당선의 가장 큰 공신은 노무현 정권이다. 달리 말하면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모든 사람이다. 알다시피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에 투표한 사람의 범주는 매우 넓다. 노사모뿐 아니라 이른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거개가 ‘비판적 지지’의 이름으로 노무현을 찍었다. 당시 노무현에게 투표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던 것 같다. “현실적인 사회진보”나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따위 매혹적인 캐치프레이즈를 거부한다는 건 말이다.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 문제는 민주화가 아니라 자본화”라는 말을 반복하던 내 주변에서도 여럿이 노무현에게 투표했다. 어쩌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에게 투표하는 일은 사회의식의 결핍이라기보다는 진정성의 과잉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오히려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되고 한참이 지나 ‘신자유주의 개혁 정권’의 정체가 충분히 드러난 후다.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사람을 나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오로지 노무현 욕만 할 뿐이었다. 노무현이 나를 속인 것이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나서 변한 것이지 내가 잘못 한 건 없다는 얼굴을 한 사람들로만 가득했다. 만일 “내가 틀렸다. 노무현 정권이 진보적일 거라 기대를 한 내가 순진했다. 개혁은 역시 진보가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절반만, 아니 절반의 절반만 되었어도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반성도 성찰도 없이 줄창 노무현 욕만 하는 사람들 속에서, 한나라당과 조중동 욕만 하면 다인 듯 행세하는 그들 속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은 알뜰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은 이명박이라는 ‘능력 있는 도둑’에게 몰려간 것이다.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오늘 광장의 열기를 폄훼하지 않는다. 광장의 한계를 고민하면서도 아이 손을 잡고 광장에 나간다. 이명박을 욕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며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길 바라는 건 너무나 정당하다. 그러나 이명박을 욕하고 그가 물러나길 바라는 일이 우리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까지 대신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내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며 나 스스로가 작은 이명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를테면 ‘0교시 문제’ 등이 불거졌을 때 다들 “이명박이 애들 다 죽인다!”고 욕했지만 사실 이미 애들은 우리 손에 다 죽어가고 있지 않았는가? 이명박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공식화하려 했을 뿐이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4년 전 광장, 이른바 탄핵사태의 광장을 기억하는가? 노무현이 변했다며 욕하던 사람들이 노무현이  탄핵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민주주의의 순교자로 임명하여 화려하게 부활시킨 광장 말이다. 그 덕에 이미 지지율이 바닥이던 노무현 정권은 단숨에 원기를 회복하여 남은 임기 내내 한층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나갈 수 있었다. 성찰이 없는 분노는 거대한 카타르시스일 뿐이다. 80만이 아니라 800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어른들은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