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 엽서 이야기 본문

저널 / Zenol

어느 엽서 이야기

zeno 2007. 8. 16. 21:19
  안녕? 난 엽서라고 해. 왜 이름이 그렇냐고? 어쩌겠어. 난 그냥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서 똑같이 생긴 친구들과 함께 팔리던 수많은 엽서들의 하나인 걸.
  내가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번 내 여행기를 들어보라는 거야. 어때, 한번 들어볼래?
  작년 어느 여름날이었어. 한 6월 26일 쯤 됐나? 친구들과 함께 바깥 세상을 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였는데, 어떤 남자가 날 집어들고 밖으로 나온거야. 그 날부터 나의 여행은 시작됐지. 그 남자는 유럽 배낭여행을 하던 한국인이었어. 나는 그를 따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등 여러 나라들을 거치다 결국 그의 모국이라는 한국에 들어왔지. 그러고 한 1년 쯤? 그 남자의 방에 다른 엽서 친구들과 함께 고이 모셔져 있었어. 간혹 그 남자는 나를 집어 들고 유심히 살펴보다 다시 내려놓는 괴이한 행동을 반복했지.
  그렇게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나는 지난 달 갑자기 어느 어두컴컴한 곳에 담겨졌어. 꽤 긴 시간이 후 밝아졌기에 주변의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영국이라지 뭐야. 맙소사.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가 싶어 내심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었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또 다시 암흑 속에 갇혔지. 다시 빛을 보게 되자, 그 남자는 대뜸 내 등에 이상한 글자들을 새겨넣기 시작했어. 웬걸, 끔찍하게도 그 남자는 내 등 빽빽히 그 짓을 하지 뭐야. 나는 발버둥치고 싶었지만, 별 수 있나, 나는 그냥 엽서인 걸.
  다음에, 나는 어떤 책 사이에 끼워져 우체국이라는 곳에 갔어. 그랬더니 그 남자는 나 말고 다른 엽서 친구들 위에 'BY AIR MAIL'이라 쓰인 종이와 어떤 여자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를 덕지 덕지 붙이더라? 근데 난 안 붙여. 난 궁금했지, 이 남자가 왜 그럴까 하고. 그 친구들 역시 등에 빼곡히 괴상한 글들이 쓰여 있었거든. 그러더니 이번엔 또 걔네하고 날 생이별을 시켜요. 난 슬펐지. 그나마 동병상련을 겪고 있던 친구들과도 떨어지게 되었으니. 그랬더니 다시 그 남자가 똑같은 종이들을 내 등에도 붙이는 거야. 난 순간 '야호!'하고 소리 지를뻔했지. 다시 친구들과 보게 해주는 줄 알고.
  그러나 웬걸. 그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날 똑같은 책에 끼워 또다시 길고도 깊은 심연 속으로 쳐 넣었어.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니, 이게 뭐야! 다시 그 남자 방이었어. 아, 이 최악의 인간. 도대체 날 갖고 얼마나 왔다 갔다 하는거야! 며칠 후, 그 남자는 다시 날 집어 들고 어느 곳으로 나갔어. 그 곳엔 왠 신기한 기계가 하나 있더라. 나를 모으는 곳이라던가. 그 남자는 화면의 버튼을 몇 번 누르더니 날 집어넣고 동전 몇 개를 딸가닥 거리고는 이내 갔어. 나는 다시 어둠 속에 갇혀 울고 싶었지. 하지만 다행히도 그 곳에는 나와는 좀 다른 모양을 한 편지라는 친구들이 있었어. 그래서 난 지금 그 친구들과 내 다음 여행을 기다리는 중이야. 어때, 너희 생각엔 내가 다음에 어디로 갈 거 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