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 기고 / 학문시장의 노예들 / 홍원식 본문
17세기 영국의 베이컨과 밀턴의 주장 이후 천부적 인권으로 발전한 ‘학문의 자유’는 대학의 역량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따라서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나 학생들이 당사자의 자질 등을 이유로 총장 퇴진 운동을 전개하는 등의 모습은 당연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그러한 점에서 최근 뜨거운 감자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고려대 이필상 전 총장에 대한 사퇴 논쟁은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당사자의 사퇴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버린 ‘이필상 사태’는 몇 가지 점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부분들이 있다.
첫째, ‘문제 제기의 시점’이다. 이필상 총장의 퇴진을 주장한 학교 안 조직이나 인사들이 총장 선거 전에 현안 문제들을 지금처럼 집요하게 문제시했느냐는 것이다. 만약 알고도 문제시하지 않았다면 방관자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고, 뒤늦게야 알았다면 거대한 사학재단의 시스템상의 결함을 지적하고 자인한 뒤에 절차적 정당성의 한계에 대한 논의를 먼저 했어야 할 것이다.
둘째, ‘문제 제기의 주체세력’의 문제다. 이필상 총장에게 돌을 던진 세력은 학생들이 아니라 일부 교수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수많은 대학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전개되어 온 총장 불신임 내지 퇴진 운동은 주로 학생들이 주체세력인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열린 세상인 오늘날, 이필상 사태와 관련해서는 대학사회를 구성하는 한 주체인 학생(학부생이든 대학원생이든)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일부 교수들의 성토 목소리만이 높았다. 이런 상황은 ‘이필상 퇴진 운동’이 학문시장에 독버섯처럼 만연한 ‘교수들 간의 알력 싸움’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셋째, 이필상 사태의 본질적 쟁점이 갖는 ‘대한민국 학문시장 내에서의 비난 가능성 정도’의 문제다. 간간이 불거지긴 했으나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은 ‘학문시장 내의 노예’ 문제를 방치한 가운데 이필상 사태가 전개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원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거나, 직접 겪었으면서도 감히 공개리에 드러내 놓지 못하고 있는 최고급 노예시장 문제가 이 기회에 함께 공론화되어야 옳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이필상 사태를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 대학원에서 반세기를 넘게 방치되어 온 학문시장의 노예들이 겪는 고통은 필설로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제자가 쓴 논문 100%를 자기 이름으로 외부에 발표하면서도 논문 표지는커녕 주석에서도 제자의 이름은 흔적도 남기지 않는 ‘완전범죄형’ 스승, 학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적 심부름에서부터 제자의 휴대전화나 차량을 수년째 당당히 무상으로 사용하면서도 제자들 위에 군림하는 ‘폭군형’ 스승, 자신의 배우자나 친인척이 운영하는 각종 사업 관련 상품 구입이나 보험 가입을 제자들에게 강제하는 ‘갈취형’ 스승, 이 모든 해악을 제자에게 강제하는 ‘통합적 만행형’ 스승 등…. 스승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일반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형태의 폭압에 신음하며 대학원 졸업장(학위) 하나를 손에 쥐기 위해 잠 못 이루는 이들이 오늘도 있다.
대학자치를 통해서 꽃피우고자 하는 학문의 자유는 특정 대학 울타리 내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진리 수호 차원의 문제다. 이제 우리 사회의 지식인 집단을 포함한 국민들은 학문시장의 구조적 문제점과 이필상 사태의 이면과 진정한 본질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