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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베르베르의 탄생에 축배를! – 배명훈, <<신의 궤도>>, 문학동네, 2011. 본문

평 / Review

한국의 베르베르의 탄생에 축배를! – 배명훈, <<신의 궤도>>, 문학동네, 2011.

zeno 2012. 2. 5. 23:30
신의 궤도 세트 - 전2권 - 8점
배명훈 지음/문학동네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프랑스인 소설가가 있다. 혹자의 평에 따르면, 고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큰 인기를 끄는 작가다. 한 인터넷 서점에 따르면, 최근 번역 출간된 소설이 종합 top10에 6주 째 올라 있다.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가 이렇게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가 된 계기는 <<개미>>라는 장편 소설이었다. 인간을 "손가락들"이라 지칭하는 이 과학적 추리 탐구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이름을 한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켰다. 이후 베르베르는 내는 책마다 한국에 번역 출간되며 인기를 구가하였고, <<나무>>, <<신>>, <<파피용>> 등 수도 없이 많은 베스트셀러를 양산하며 번역 소설계의 스타 작가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서두에 장황하게 베르베르에 대한 소개–이 평을 읽는 독자라면 불필요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를 늘어놓는 까닭은 본 서평의 대상인 한 작가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배명훈. 외교학 석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 소설가는 이미 2009년에 선보인 <<타워>>라는 연작소설집을 통해 SF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며 일군의 독자층의 주목을 끌었다. 소품집의 하나로 볼 수도 있겠지만, SF라는 근본 장르 위에서 여러 장르를 차용해 늘어 놓인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재기 발랄했다. 하지만 이어진 단편집 <<안녕, 인공 존재!>>는 작가 개인의 관심을 끌고 가며 그의 장점인 SF적 역량을 펼쳐 보였지만, 이를 '소설'이라는 독자와의 약속으로 전유하는 데 실패하며 일부 독자에게 실망을 안겼다. 하지만 그가 돌아왔다. <<신의 궤도>>라는 일견 거창한 제목을 단 두 권의 소설과 함께.

    이 장편소설에서 작가는 <<타워>>에서 선보였던 세계관과 SF적 특징을 일종의 '평행우주' 상에서 재배열하는 데 성공한다.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서사에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는 과학적 지식의 결합, 종교와 정치를 넘나드는 인문사회과학적 소양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하나의 그럴듯한 세계, '나니예'를 창조해낸 것이다. 여기에 상상된 세계의 폭을 현재의 한국으로부터 추출한 결과 어색한 서양의 이름을 달지 않은,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행성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게다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도를 기본적인 '천하삼분지계' 위에 개성 있는 인물들과 설정들로 재구성함으로써 그 자체로 속도감과 흥미를 갖춘 오락물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여기서 배명훈의 장점은 현대 한국 소설가들 중 일부의 경향 중 하나인 '평행우주의 차용'이 그들과 달리 보다 과학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납득할만한, 다시 말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사용하지 않고도 독자가 수용 가능한 서사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이 소설의 장점은 베르베르와 비견할 만하다. 작가 자신의 취향인 SF를 단순히 장르소설의 틀에 가두지 않고, 보다 널리 읽힐 수 있는 소설의 맥락에 접합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재목이 자체적으로 주목 받는다면 좋으련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부 작가에게 집중된 한국 소설 독자층의 관심은 아직 젊은 인재에게 향하지 않은 듯하다. 이에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감히 "한국의 베르베르의 탄생에 축배를!"이라는 제목을 붙이며 한 젊은 소설가의 신작을 읽어볼 것을 호소하는 바이다. 물론 아직 '신진 소설가'라는 점에서 한계가 보인다. 특히, 아직 다듬어지지 않고 채 형성되지 않은 듯한 작가 특유의 문체는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작가들의 문장이 김훈의 그것을 지향할 필요는 없지만, 보다 나은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조금은 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근래 젊은 남녀 작가들의 경향이 성별 별로 두셋으로 국한되던 풍토에 이 같이 신선한 '베르베르적' 소설가의 등장은 차후에 대한 기대를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