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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아쉬웠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뮤지컬 - 뮤지컬 살인사건 본문

평 / Review

[뮤지컬] 아쉬웠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뮤지컬 - 뮤지컬 살인사건

zeno 2006. 12. 17. 21:25

1. 들어가며

  지난 10월 7일, 길었던 추석 연휴의 중간 즈음에 대학로에 위치한 PMC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뮤지컬 살인사건을 보았다. 이 뮤지컬을 보게 된 데에는 광고의 영향이 컸다. 유명 배우 송승환 씨가 대표로 있고, 난타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제작사 (주) PMC 프러덕션의 재력 때문인지 이 뮤지컬에 대한 광고는 10월 초 당시 각종 언론 ․ 웹사이트 등지에서 쉴 새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평소 텔레비전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흐름과 접하고, 잡지보다는 일간 신문을 보는 나로서는 양 측에서 쏟아지는 광고에 솔깃하였고, 이미 관람한 친구가 추천하기까지 하여 이 뮤지컬을 보리라 마음먹기 전부터 상당히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길고 긴 추석 연휴 동안 공연 한 편쯤은 보겠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티켓링크 등의 인터넷 예매 사이트를 돌아다니던 중 추석 이벤트로 본래 35,000원 짜리 티켓을 17,000원에 판매하고, 추석 연휴 기간에는 송편까지 덤으로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만 처박혀 있던 터라 전혀 추석임을 느끼지 못하던 내게 그 기회는 구미가 당겼고, 평소 공연을 좋아하던 친구와 함께 보기로 약속하고 예매하였다. 그런데 예매를 마친 후 컴퓨터를 끈 뒤에 갑자기 친구가 ‘사랑티켓’에서는 추가 할인이 가능하다며 연락해왔고, 나는 부랴부랴 티켓링크에서 한 예매를 취소하고 사랑티켓에서 장당 10,000원에 예매하게 되었다. 이렇게 상당한 양의 할인 및 송편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을 통해 제작사가 긴 연휴 동안 줄어들기 쉬운 관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극장은 대학로의 어느 건물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 20분 전까지는 지하 입장을 금하여 많은 수의 사람들이 노변에 그냥 서서 기다려야 되는 불편이 있었다. 시간이 되어 내려갔더니 작은 로비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동 제작사에서 제작한 다른 뮤지컬들의 포스터가 살인사건의 포스터와 함께 붙어 있어 로비와 뮤지컬 살인사건과의 관련성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로비 한 쪽에는 공연 팸플릿과 다이어리 등을 파는 공간이 마련 되어있었지만, 역시 주변에 다른 공연 포스터가 함께 있어 산만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지하로 들어오는 계단 앞에 바로 화장실이 있고, 또 로비가 이와 이어져 있고 로비에서도 공연장 입장까지 대기 시간이 있어 로비에는 지상으로부터 계단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 로비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 등이 한 데 모여 혼잡했다. 이 혼잡에는 애초에 건물 구조가 그리된 탓도 있지만, 작은 로비에 관객들이 들어온 후 공연장에 입장하기까지 대기 시간을 둔 제작사의 부주의가 느껴졌다.

  티켓팅은 배우가 직접 티켓팅을 하기도 하는 소극장들과는 달리 기업적 구조를 갖춘 제작사의 특성인지 전문 직원이 따로 있었다. 한편, 티켓팅 시에 옆에서 다른 직원이 옆에서 송편을 나누어 주어 애초 약속되었던 이벤트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애초 예상과는 달리 좌석이 200석 남짓이었다. 좌석은 의자였는데 티켓링크에서 예매한 경우에는 지정좌석제로, 사랑티켓에서 예매한 경우에는 선착순으로 지정좌석을 배정해주는 형태였다. 막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막은 ‘열려 있었’고, 보랏빛 조명과 함께 특별한 무대장치는 없었다.

  공연에 앞서 암전과 함께 안내 메시지가 영상으로 제공됐다. 영상은 극장주 송승환을 등장시켜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휴대폰 전원을 꺼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는데, 극장을 실제 배경으로 찍은 것이라 현장감과 사실감이 느껴졌다. 늘 똑같은 내레이터의 내레이션과 함께 제공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자막 안내 메시지와는 달리, 공연자 혹은 극장과 가까움을 느끼게 하는 안내 메시지가 참신하면서도 재밌었다. 안내 메시지 영상이 나온 뒤 다시 한 번 암전이 이루어졌고, 공연자가 무대에 등장하면서 뮤지컬이 시작되었다.

  이상의 오프닝을 고려해 볼 때, 이 공연은 오늘날 가장 유행하는 트렌드를 충실히 따르는 프레임을 설정하였다고 할 수 있다. 2006년의 추석이라는 시간적 맥락과 대학로 소극장이라는 공간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여 이 공연의 주 관객층인 20대가 요즘 가장 선호하는 형태인 무대와 관객이 ‘서로 호흡하여 친밀한’ 형태의 프레임을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객이 친밀감을 느끼도록 이끌고자 하는 공연자 측의 노력은 추석 할인 및 선물 이벤트나 신선한 영상 사전 안내 메시지, 가까운 무대와 관객간의 거리, 작은 극장 규모 등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소규모 창작 뮤지컬이 추구할 수 있는 전형적인 프레임을 효과적으로 형성하였다고 생각된다. 

  한편, 그런 전체적인 프레임과 조금 엇나가는 설정이 있었다. 공연자와 관객 간의 ‘실제 교류’는 없었던 것이다. 요즘 많은 공연들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대에서 직접 배우가 나오거나, 공연 시작 전에 무대에 등장하거나, 무대 뒤에서 나오는 등 각종 시도를 통해 공연자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뮤지컬 살인사건의 경우에는 그런 설정이 없었다. 옴니버스 형식의 공연 중간에 공연자들이 관람석 뒤편으로 퇴장하기도 하였지만, 공연 전에 설정된 프레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프레임 형성에 큰 기여를 하지는 못하였다.

2. 뮤지컬에서

  뮤지컬 살인사건은 크게 3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의 큰 줄거리는 죽어서 저승에 간 한 형사가 생전에 해결하였던 세 가지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은 인간의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2가지와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문화의 한 코드가 된 ‘조폭’ 이야기 한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이야기는 형사가 생전에 조사하였던 것과는 달리 ‘반전’을 품고 있었고, 형사가 사후에 그 사건들을 잘못 조사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반전이 밝혀지게 된다. 요즘 관객들은 보통 이런 설정이라면 숨겨져 있는 복선이나 연계성 등을 상상하지만 이 뮤지컬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애초 설정 그대로 형사가 연결고리가 될 뿐 사건 간에 연계성은 없다.

  공연 시작 전에 형성되었던 프레임은 극 초반에도 계속 형성된다. 암전 이후 극이 시작되면서 등장하는 형사가 관객에게 자신의 직업 등을 맞추어보라면서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 과정 속에서 관객들은 무대와 자신들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친밀감을 느끼고 보다 극에 몰입하게 된다. 단순히 ‘관객’의 입장으로 ‘무대’에서 전개되는 극을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직접 ‘공연자’의 일부로 공연에 참가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경험은 더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가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석 통로를 가로질러 뒤로 퇴장하며 관객이 다시 한 번 무대를 가깝게 느끼도록 이끄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더 이상의 프레임 형성은 이루어지지 않고, 뮤지컬이 끝날 때까지 ‘어중간’한 프레임이 지속된다.

  이 뮤지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상’의 활용이다. 극이 시작되는 오프닝에서부터 출연진들이 마무리 인사를 하는 끝까지 영상이 여러 차례 적절하게 활용되어 보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일례로, 각 이야기가 시작할 때 이야기의 이름과 배경을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별도의 내레이션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영상이 단순히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 형태로 제시되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또한, 코믹한 음악이 영상과 함께하여 관객의 흥미를 돋우고 집중을 유도하는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뮤지컬 살인사건은 왜 연극이 아닌 뮤지컬로 만들어졌는지 의심을 갖게 할 법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뮤지컬의 본질인 배우들의 노래가 어색했다. 일상적인 대사를 하던 배우들이 중요한 순간에서 노래로 감정을 표현할 때, 여러 배우들의 발성에서 고저가 느껴지지 않아 노래가 무미건조했고, 혹은 지나친 감정 과잉이 느껴져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훌륭한 노래솜씨와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배우도 있었다. 하지만 각 이야기의 주연급 배우들의 노래가 기존에 보아 왔던 여타 뮤지컬에서와 달리 대사로 해도 무방할 내용을 억지로 선율에 얹은 것으로 느껴져 거북한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연극’이 아닌 ‘뮤지컬’을 표방하기 위해 억지로 노래가 삽입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뮤지컬은 본디 유럽의 발라드 오페라나 미국의 뮤지컬 코미디에서 기인한 공연 형태이다. 그래서 기존의 오페라보다 대중적이며 코믹한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한편, ‘노래’가 극 중간에 삽입된다는 점에서 연극과 차이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살인사건은 오페라도, 연극도 아닌 전형적인 뮤지컬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집착하여 노래를 집어넣다 보니 어색해져버렸다.

  한편, 창작된 지 얼마 안 된 뮤지컬이기 때문인지 내용적 측면에서도 부분적으로 결함이 보였다. 먼저, 추리의 형태를 띠고 있는 극의 특성상 두뇌를 열심히 사용해가며 서사구조를 따라가다가 맞닥뜨린 각 에피소드의 반전과 완결이 미심쩍었다. 사실 극 전개 와중에 반전이 예상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관객들이 워낙 많은 영화 ․ 드라마 ․ 공연의 세례 속에 살고 있어 워낙 반전 예측에 능하다 보니 관객들의 허를 꿰뚫는 반전을 구상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관객이 반전을 알고 난 뒤 스토리를 되새겨봤을 때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큰 문제로 느껴졌다.

  물론 이 문제는 11월 말 현재 막을 내린 이 뮤지컬이 다시 상연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때까지 미진한 내용들을 수정함으로써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실제로 장기 공연하는 공연들의 경우에는 초기의 내용적 결함들이 장기 공연 과정에서 점차 수정되어 보다 완전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공연계의 스테디셀러가 되거나 외국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많은 영화에서도 입증되듯 한국인들이 스릴러 ․ 추리물과 코믹물을 좋아한다는 점과 살인사건이 2달 반가량 진행된 공연에서 제작사의 전폭적인 광고 지원을 업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뮤지컬이 내용적 결함을 보완하고 차후에 다시 공연된다면 보다 큰 인기를 끌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편, 뮤지컬 살인사건은 무대 구조를 잘 활용한 작품이었다. 단순히 1층 무대를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측면이나 2층 등까지 활용하여 단조로움을 느끼게 하는 시선 집중을 예방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 사이사이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암전마다 정면, 2층, 측면 등 다양한 공간 활용이 이어져 시각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단순히 영상 상영 공간인줄만 알았던 2층에서 등장인물들이 나오기도 하고, 암전 후 예상치 못했던 측면에서 등장인물들이 연기를 펼치기도 하여 작은 무대가 실제보다 넓게 느껴졌다. 그 결과, 처음에는 한 곳에만 비춰져 어색하다고 느껴졌던 조명이 무대 공간이 바뀔 때마다 위치를 바꾸어 뮤지컬을 즐기는데 도움을 주었다. 

3. 나오며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뮤지컬들은 대부분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등 대규모 공연장에서 상연된 것들이었다. 심지어, 런던의 웨스트엔드나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본 것들마저도 대규모였기 때문에 난 뮤지컬이란 으레 그런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 본 뮤지컬 살인사건은 달랐다. 대학로에 위치한 소극장에서 공연되었기 때문에 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보다 ‘딱딱하지 않아 편안한’ 프레임 속에서 재미있게 뮤지컬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영상 ․ 공간의 활용 등이 기존 뮤지컬들과는 달랐기에 보는 재미를 더했다.

  하지만 뮤지컬의 본질이라고 생각되는 ‘노래’와, 공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 측면에서 결함이 느껴져 아쉬웠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냥 만족하기보다는 불만이 남았다. 아마추어 극단도 아니고, 소위 ‘잘 나가는’ 제작사의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서 미진하다는 점이 특히 나쁜 인상을 남겼다.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극단 산울림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텅텅 빈 관객석을 통해 뮤지컬보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우리나라 연극의 현실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큰 감동과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것에 비교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기존 대형 뮤지컬에서는 보지 못했던 창의적인 시도에서 발전 가능성 또한 느껴졌다. 지금은 막을 내린 상태지만 미진한 점을 보완되어 다시 한 번 상연된다면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작품인 것이다. 워낙 외국에서 들여온 대형 뮤지컬들이 과점하고 있는 우리나라 뮤지컬계라 과연 재상연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연애와 조폭 코미디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고 상연 기간 동안 나름의 성공을 거둔 점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훗날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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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예술의 이해 레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