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6장 자기조정 시장 그리고 허구 상품 : 노동 ‧ 토지 ‧ 화폐 본문

ㄴ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제6장 자기조정 시장 그리고 허구 상품 : 노동 ‧ 토지 ‧ 화폐

zeno 2009. 12. 27. 17:26

19세기의 시장경제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장은 분명 사회 체제에 흡수되어 있는 경제 체제의 일부에 불과했고, 시장 역시 자기조정은커녕 중상주의 이후의 국가 규제를 통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시장경제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은 인간이 화폐 수익 극대화를 달성하려는 존재이며 경제의 재화의 생산 및 분배가 모두 여러 가지 가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한편, 모든 생산은 이제 시장에서의 판매를 위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결과 재화뿐만 아니라 노동 ‧ 토지 ‧ 화폐 같은 생산 요소 역시 시장에서 상품으로써 거래되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가격은 임금 ‧ 지대 ‧ 이자라고 불리어 각각의 생산자의 소득이 된다. 그리고 시장만이 경제 영역을 담당하는 권력이어야 하고, 정부의 정책과 법안은 시장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작동을 보조하는 역할만을 맡아야 한다.

이전의 봉건제 및 길드 체제 아래서는 토지와 노동이 사회 조직의 일부를 구성하였다. 특히, 토지는 봉건 질서의 핵심을 차지하였고, 지위와 기능은 법에 의해서 규정되었다. 한편, 노동은 길드 체제를 조직하는 주요 원리였다. 이런 현실로 인해 상업화를 지향하던 중상주의 역시 토지와 노동은 상업 거래의 영역으로부터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중상주의는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상업 영역에 대한 국가 개입이 필요불가결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자기조정 시장은 사회를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으로 제도적으로 이분하고, 노동과 토지 같은 사회의 실재를 시장의 메커니즘 아래 종속시켜 시장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이것들이 수요 공급과 상호작용하는 가격을 갖고 시장에서 거래되며, 모든 시장들이 서로 연결되어 총체적 시장One Big Market을 형성해야 했다. 그러나 노동 ‧ 토지 ‧ 화폐는 분명 상품이 아니다. 상품을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생산한 물건이라고 보았을 때, 인간 활동의 이름인 노동은 결코 생산되는 것이 아니니 상품일 수가 없는 것이다. 토지 역시 자연의 다름일 뿐이니,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화폐는 은행이나 국가가 보증하는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지, 이 역시 생산물이 아니기에 상품이 아니다. 그런데 자기조정 시장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상품 허구commodity fiction를 유지해야만 한다. 요소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시장 체제 자체가 위협받게 되고, 따라서 이를 야기하는 법령의 개입을 방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 ‧ 토지 ‧ 화폐라는 사회의 실체가 보호받지 못하고 시장경제라는 ‘사탄의 맷돌’에 노출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한 인간의 몰락과 자연의 파괴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인간 사회 자체가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생산을 판매와 구매에 의해 조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상주의까지의 상업 사회에서는 ‘선대제’에 참여한 상인들이 시장의 요구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생산이 이뤄질 수 있었다. 즉, 18세기 말까지 서유럽에서는 상업이 중추가 되고 산업 생산은 이의 부속이었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기계가 정교해지고 공장제가 도입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 생산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상업의 보조자 역할을 하던 산업이 이제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 ‧ 토지 ‧ 화폐의 지속적인 공급이 보다 중요해졌고, 이를 위해서는 이 세 가지는 언제든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들의 조직 원리를 마치 상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즉 시장의 형태로 바꾸어야만 했다. 인간 사회가 경제 체제의 부속물이 된 것이다.

종획운동처럼, 산업혁명 역시 거대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전자가 공동체에 의해 감내될 수 있었던 반면, 후자는 보다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사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보호 운동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9세기는 진짜 상품을 보다 시장적으로 조직하려는 운동과, 허구 상품에 대한 시장적 조직을 사회 차원에서 제한하고자 하는 운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중적 운동double movement’의 세기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