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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본문

ㄴ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제3장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zeno 2009. 9. 16. 13:35

변화의 방향이나 속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당연히 그 변화는 억제되어서라도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에서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에 의해 추동된 경제 성장의 옹호와 공동체적 통제에 대한 비난은 이 같은 상식을 소멸시켜 버렸다.
  이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오류는 산업혁명보다 이미 훨씬 더 먼저 경제 개발 논리를 앞세워 삶의 터전을 파괴한 바 있는 - 비록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시켰을지라도 - 종획운동enclosure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종획운동 같은 경제 개발은 결국 보상효과 - 농업이 목양업이나 양모 제조업으로 바뀌고, 서비스업이 자동차제조업으로 바뀌는 등의 과정을 걸쳐서 형성되는 장기적 균형을 가능케 하는 것 - 를 가져왔지만 이는 시장경제의 틀이 선행될 때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자들의 반란’이라 할 수 있는 종획운동이 사회 전체를 황폐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에 맞서 사회경제적 약자 계층을 지키고자 하는 정부의 저지가 필요했다. 이마저 없었다면 종획운동이 산업혁명 이전에 ‘사탄의 맷돌’의 기능을 수행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경제적 진보는 인간의 삶의 터전을 짓밟지 않는 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제어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장기적’으로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이 작용하였다면 으레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 속단하는 것은 부당하다. 시장경제라는 것은 19세기 영국에서야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시기에 대해 자기조정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시장경제의 법칙이 작용하였을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
  역시 종획운동처럼 해외무역에 의해 촉발되어 평민들을 덮친 산업혁명의 최대 피해자는 이번에는 농민이 아닌 도시민이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사회적 변화는 경제적 발전만큼이나 큰 충격이었고, 이 때 등장한 새로운 메커니즘에 대한 사회적 자구책이 19세기 문명을 구성했다. 이의 시발점이 된 산업혁명의 가장 본질적 특징은 시장경제의 확립이었다. 당시 등장한 기계제 생산은 상업 사회라는 맥락과 맞물려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다. 기계와 상업의 결합 결과, 생산을 위한 노동 및 원료 구입부터 상업의 대상이 됨으로써 그야말로 시장이 상업 전체로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곧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의미했는데, 이 기저에는 사회 성원들이 생계유지를 넘어서는 이윤 추구를 삶의 동기로 삼게 되고, 화폐가 거래의 매개물로써 등장하고, 소득은 판매를 통해서만 발생한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인간과 자연이 ‘상품’이 되어 기존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그 결과 사회적 혼란이 나타나는 ‘시장’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