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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백년 평화 본문

ㄴ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제1장 백년 평화

zeno 2009. 9. 16. 13:22

19세기 문명의 붕괴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국제 금본위제의 소멸이었다. 세력균형 체제, 자기조정시장, 입헌 국가라는 다른 세 가지 기둥과 같은 제도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국제 금본위제의 붕괴로 말미암은 19세기 문명의 몰락은 막을 수 없었다. 사실 19세기 체제의 모태는 자기조정시장이었다. 국제 금본위제는 국내적 자기조정시장의 국제적 버전이었고, 세력 균형 체제는 이에 의존하는 상부구조였다. 입헌 국가 역시 자기조정시장의 피조물이었다. 그러나 자기조정시장이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적이었다. 따라서 실현 불가능한 개념을 실현하려고 한 결과, 파국은 처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사실 이처럼 하나의 개념을 통해 문명의 붕괴를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야말로 억지로 보이기 쉽다. 다양한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문명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의 지적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춘 이런 노력은 어찌하여 그 같은 거대한 변환이 일어났는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19세기 문명의 붕괴의 뒤를 이은 ‘거대한 전환’은 인류사 전대미문의 전쟁과 폭력이라는 현실과 함께 했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이를 위해 역사적 연대기를 서술하기보다는 주제의식에 따라 시점을 이동하며 간학문적으로 접근할 것임을 천명한다. 그의 분석은 세력균형이라는 원리를 통해 지탱되어 오던 국제 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된다.
  19세기 서양 문명의 특성은 100여 년간 이유야 어떻든 평화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지탱하는 정치 원리였던 세력균형은 역설적이게도 본디 국가간 전쟁의 원천이었다. 기존에 국가의 이해관계 바깥에 위치했던 평화가 관심의 중심이 되기까지는 19세기 초반 당시 국가권력을 장악했던 반동 세력, 후반 들어 본격적으로 움튼 자본주의 세력의 이해관계가 작동했다. (사실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협조 체제’라는 이름의 세력균형 원리도 작동하였다.) 19세기 전반에는 국제 평화의 기반인 국내의 평화를 위해서 로마 교회가 자신의 조직을 통해 사회적 통제에 나서며 신성동맹을 지탱했다.
  하지만 이는 19세기 후반에 몰락하며 이 자리를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대표되는 오트 피낭스, 일종의 국제 금융이 차지했다. 로스차일드는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제적인 평화를 유지했고, 이는 각국 정부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와 국제 금융 간의 관계는 단순한 위계이기보다는 공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주도권은 국가권력이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익이 달린 오트 피낭스처럼 각 국가 역시 생존을 위해 평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오트 피낭스의 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약소국은 오트 피낭스에 의해 금본위제나 헌정주의라는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며 국제 질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오트 피낭스는 터키 등의 반식민지 국가의 비공식적 금융 행정까지 맡아보며 자신들의 이익에 복무했고, 이는 평화의 유지로 이어졌다. 물론 레닌의 주장처럼 국제 금융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무역을 통한 이익과 연결되어 있는 국제 금융은 상황에 따라 평화를 유지하였다. 당시의 특징은 전면전은 엄격히 방지하면서 평화로운 영리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국지전은 방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 금융은 전쟁 중의 평화로운 영리 활동을 위한 국제적인 제도를 만들었다.
  19세기 내내 평화를 지탱한 정치 제도인 세력균형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를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사회 기관을 제공한 존재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후반 들어 오트 피낭스에 의해 지지된 이 체제는 전 반세기에 비해 훨씬 더 큰, 전지구적인 규모로 이뤄졌다. 백년간의 평화는 결국 삼국협상과 삼국동맹이라는 세력균형 원리의 지속을 위해 필요한 제3세력의 존재를 배제해버리는 두 국가집단이 등장하면서 결국 깨져버렸다. 이와 동시에 평화를 지켜오던 오트 피낭스의 영향력도 급속히 감소했다. 이 사실 역시 평화의 기반에 경제 조직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제 문제는 그 경제 조직의 인위적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