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알 본문

저널 / Zenol

zeno 2008. 12. 20. 00:59

  데미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새는 알을 깨고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중학교 때 이후로 이 구절에 빠져 살아왔다. 항상 알을 깨고자 노력했다. 한 때는 아브락사스의 의미를 깨달았노라고 자부하고 살아왔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전혀 모르겠다. 솔직히 알을 깨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이 곳에 스스로 공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즉, 내 글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패기를 잃은 것일 수도 있고,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에 따르는 의무를 버거워한 탓일 수도 있다.
  매 순간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는 기분이다. 믿어왔던 것, 지향해왔던 것, 행동해왔던 것, 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아닐지도 혹은 틀릴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들면서,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던 알의 껍질이 하나둘씩 깨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새로운 알 껍질을 만들어 내어 더욱 단단해지던가, 끊임없는 자기파괴를 방치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했던가. 아마 후자였던 듯 하다.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그 결을 섬세히 표현해낼 수 없겠지만,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오늘도 이야기가 추상적이다. 오늘 문득 느낀 건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스스로가 '언어화'에 약한 것 같다. 다시 말해, 생각을 제대로 말 혹은 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본래 능력의 부족일 수도 있고, 퇴화한 것일 수도 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학기말에 몸이 심하게 아프다. 마음이야 원래 아파왔던 거고. 기존에 견지해오던 알을 깨고 새로운 알 껍질을 만들어 나가려고 내심 노력하는 중인데,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 이래저래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떠나기 전까지 쉴 이유가 생겼다는 것. 사실 11월 중순에 '몸이 아픕니다' 식의 제목을 단 포스팅을 하고 블로그를 쉬려고 마음 먹었던 적이 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냥 블로깅을 계속하기로 했는데, 사실 한 달 뒤에 이 같은 아픔이 찾아올지는 몰랐다.
  다만 그간의 경험과 생각, 타인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변화에 대한 방향성을 조금씩 구체화시키고 있기에 시의적절하게 찾아온 고통인 것 같다. 변화의 시간은 한 6개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더 걸릴 수도 있겠지만, 아마 최소한의 기틀 혹은 싹이 보이게 되지는 않을까.
  행복은 결국 내 스스로 찾는 것이지, 누군가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고독이다. 이 단순한 명제를 깨닫기 위해서 너무 오랫동안 방황한 것 같다. 이제 본질을 어느 정도 알았으니, 남은 것은 실천 뿐. 남들 다 하는 건데 나 혼자 패배주의에 빠져있을 수는 없다. 다행히 이를 위한 방법도 몇 개 생각해두고 있고, 미래도 보인다. 자신감이 아니라 자존감을 키우고, 혼자서 짊어맬 수 없는 큰 짐을 지려고 무리하기 보다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짐을 나눠멜 생각이다. 사람의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범인에 불과하니 그저 나름의 방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몸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링겔을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좀 나아지려나.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며칠 째 물과 죽만 먹고 사려니 왜 이리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음식들이 다 맛있어 보이는지. 정말 '일체유심조'인건가. 이 글은 당신을 걱정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다짐에 가깝다. 알을 깨기 전에 혹은 그것과 동시에 알의 실체를 파악해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