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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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2013년의 시간들

zeno 2013. 12. 25. 14:56

2013년의 시간들


1월


노래방이었다. 새해였다. 노래방에서 새해를 맞았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1년의 전조 같았다. 회고이다 보니 1년의 테마를 부여한 뒤 짜 맞추는 것일지 몰라도 의도대로 가기 보다는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한 해였다. 그럼 회고를 시작해 보자.

  아마 새해가 된 뒤에 결정됐을 거다. 부임지가. 원주에 가려던 전략이 실패한 뒤 가장 서울에 가까운 곳을 찾다보니 성환, 2여단에 가게 되었다. 특기학교가 끝난 뒤 잠시 놀다 성환에 처음 갔다. 시작은 좋았다. 가서 인사를 하자마자 집에 가서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니. 음, 첫 처장은 좋은 분이었다.

  1월은 생각보다 금방 갔다. 낮엔 어리바리하게 일에 적응하고, 밤엔 난방을 틀지 못해 추위에 떨고, 주말엔 세미나를 한답시고 노원과 대학로를 배회했다. 시작은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2월


2월 역시 금방 갔다. 본격적으로 출납공무원 일을 시작했다. 늘 바빴지만, 오후에 부대를 빠져나가는 게 참 좋았다. 추위는 계속 됐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갔다. 퇴근 뒤에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좋았다. 겨울밤은 길었다. 공부를 하기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스스로를 다잡았다.


3월


많은 게 바뀌었다. 일단 지내는 방이 바뀌었다. 구형 관사에서 구형 독신자 숙소로 옮겼다. 일단 난방이 되고, 독립 가구라는 게 좋았다. 책상이 생겼다. 이제 방에서 무언가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즈음 사무실에서 약간의 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괜찮은 ‘척’ 넘어가니 아무 일도 없었다. 첫 휴가이자 일본 여행이 결정되었다.


4월


음... 역시 회고적 기록을 하자니 하루의 1/3, 실제로는 한 주의 5/7을 차지하는 부대 생활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아쉽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초반에 야근을 많이 했다. 월 중 평일 3일 동안 일본에 가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슬슬 일이 손에 익어갔고, 세미나도 안정권에 들어섰다. 미래 계획을 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고, 일본에서 대화를 좀 하고 오는 게 좋겠다고 여겨졌다. 일본은 여전히 좋았고, 하지만 아쉬웠다. 너무 짧았다. 하지만 좋은 계기였다. 서로의 애정이 깊어졌다. 후폭풍이 1주일가량 갔지만, 과속방지턱에 가까웠다. 결국 6월 초의 방문으로 이어졌다.


5월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1년 중 가장 좋았던 때였던 것 같다. 일단 일이 손에 많이 익었다. 덕분에 중순에 이틀 정도는 출근해서 전화 받은 거 빼고는 <퇴마록> 읽은 게 전부였다. 아주 기분 좋은 나날들이었다. 퇴근해서 세미나와 관련된 공부도 다양하게 하면서 (힘들지만) 즐거웠다. 6월 데이트 계획 짜는 것도 재밌었다. 일본에서와는 또 다른 데이트가 가능하니까. 아, 수영도 시작했었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재밌었다. 가끔 1시간에 2대 오는 버스 타고 오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고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도 이때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6월


좋은 시작이었다. 애인이 온 덕분에 주중에 서울에서 맥주도 마시고, 하우스 웨딩도 (밖에서 기다리면서)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 <비포 미드나잇>도 좋았다. 줄리 델피의 살 오른 몸이 <비포 선라이즈>의 마른 처녀보다 마음에 들었다. 평범하기보다는 편안해서 좋다. 그렇게 좋았던 시간이 지나간 뒤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7월 회계감사 때문이었다. 애매모호한 업무 지시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과거 증거서류 때문에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학기 마지막 달이라 세미나가 뜸해지면서 개인 시간이 많아졌지만, 소설 몇 권 보니 끝났다. 그래도 최민석의 <체인지킹의 후예>는 괜찮았다. 아, <28>도 이달이었나? 전편만은 못했지만, 재밌었다.


7월


힘든 일정의 시작이었다. 회계감사는 우려했던 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었지만, 기간 내내 출납공무원인 나만 힘든 그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끝이 났고, 일상에 준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ORI(전투지휘검열)이 다가오며 훈련이 시작됐지만 아직은 그리 심하지 않았고, 이를 예상한 스트레스만 늘어가던 시간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8월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다를 게 없는 시간이었다. ORI를 준비하는 훈련과, 그를 피하려는 꼼수로 가득한 달이었다.


9월


ORI가 왔다. 사실 본 편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내가 맡았던 본청의 일은 조금 있었지만,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본 편은 생각보다 수월케 끝났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간 훈련 한답시고 사무실 자리를 비운 탓에 밀린 일이 폭탄으로 떨어졌고, 추석 연휴가 지난 뒤 정신없이 일만 했다. 세미나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1학기 때만큼은 아니었다. 횟수가 적어지거나 열의가 떨어졌다.


10월


일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중순이 왔고, 일본에 갔다. 평일 5일 휴가를 내서 8박 9일에 달하는 여행이었다. 역시나 좋았다.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갔지만, 지난번보다는 분명히 길었고, 다시금 관계가 깊어졌다. ‘라이브러리 힐즈’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나중에 개인 연구실을 얻게 된다면 꼭 뷰가 좋은 곳을 얻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다녀와서도 일을 하느라 바빴다. 퇴근한 뒤에는 수영을 안 하니 놀고먹었지만 그래도 바빴다. 아, 10월 초에 연휴가 있었다. 샌드위치가 3번 연속으로 이어지는 휴일이었는데, 결국 연준이 차를 통해 서울을 오갔다. 하루짜리여도 훌륭한 휴식이었다. 보직 특성 상 휴가를 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11월


바쁜 11월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린 탓이었지만,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9월 말에 신청한 세계사회학대회 발표를 기다리고, 연구재단에서 진행하는 학술서 독후감 대회 응모도 하고, 한국사회학대회 발표 원고를 제출하는 모든 과정은 개인적으로 쉽지는 않았다. 아, 거기다가 새로운 세미나를 시작했다. 무리인 줄은 알지만 고민하다가 새로 하나 시작했다. 커리의 내용이나 밀도가 분명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사회적인 것’이라는 주제 자체가 그간 관심 있었던 것들을 집약하고 있었기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로써 내년 계획은 더 복잡해져 버렸다.


12월


내년을 준비하는 달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사회학대회 준비, 처장 교체, 애인 방문, 연말, 부대장의 횡포 등이 겹치면서 바빠졌다. 아, 지난주에 급식비 사건도 있었다. 덕분에 풀로 야근하고 방에 돌아와서는 지쳐 잠들기 바쁜 경험도 했다. 다행히 학회 발표는 무사히 마쳤고, 이제 바쁜 사이클에도 적응되어 간다. 약간 우울이 돌아오기는 했으나 그래도 메리크리스마스다. 이제 올 해도 1주일이 채 안 남았다. 생각보다 금방 간 한 해였다. 이제 2주 남았네. 한 주 동안 마저 마무리하고 내년 계획을 짜야겠다. 본래 이렇게 정리하는 것에다 더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피곤하다. 그건 다음에. 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