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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 Review

[평전] 김산 평전 / 이원규 / 실천문학사 <★★★>

zeno 2009. 6. 21. 16:07
김산 평전 - 6점
이원규 지음/실천문학사

  이 글은 하나의 메모에 불과하다. <아리랑>이라 불리는 고전을 거치지 않고, <김산 평전>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우회로를 통한 김산에 대한 접근인 탓이다. 따라서 이 글은 차후, <아리랑>을 읽은 뒤에 작성할 서평을 위한 하나의 서곡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상술하기 보다는 대략적인 개요를 잡는 데 만족하도록 하자.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지점은 김산 - 본문에서는 보통 장지락이라 지칭되는 - 의 혁명 활동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휴머니즘, 즉 인간애라는 지점이다. 그가 민족주의-아나키즘-공산주의라는 사상적 유목을 거치면서도 놓지 않은 마지막 조각이 바로 휴머니즘이었다. 이는 일생 전반에 걸쳐 톨스토이로부터의 진한 영향에서 드러난다. 휴머니즘이라는 바탕과 일제에 의한 조국 강점이라는 역사적 맥락 위에 놓인 그가 택한 투쟁 수단은 선중국혁명-후조선혁명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겪었던 고난과 허무한 결말은 그가 걸었던 길의 지난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관념의 차원에서 부유하던 장지락이 몇 차례에 걸쳐 현실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성적 금욕의 원칙을 고수하던 그는 몇 명의 여자와 살을 섞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전후하여 그는 여전히 금욕주의자로서의 모습을 고수한다. 그의 금욕주의는 종교적인 것이기 보다는 관념주의적인 것이다. 스스로의 과거와 겹치기에 더욱 흥미로운데, 시대적 맥락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런 자기 스스로 부여한 제약에서 좀 더 자유로웠더라면 그가 집착적일 정도로 보였던 휴머니스트의 면모가 좀 더 사실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관념은 '친절한 일제의 수족'을 만나면서 또 다시 현실과 균열을 일으킨다. 그가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일제에 넘겨진 뒤 조사를 위해 호송되던 중 말단 일본 병사들에게 느꼈던 '인간으로서의 교류'와 '친밀감'은 '악질적인 일제'라는 기존의 관념과 충돌하며 그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는 고종석이 <경계 긋기의 어려움>에서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 존재로서의 이념적 적대자 이내의 미시 존재가 오히려 같은 단위의 이념적 동조자보다 더욱 매력적일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갖추도록 항시 노력하되, 개인과 집단을 분리시켜 사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마치며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 당시 유별난 '국제주의자'로 조명되었던 김산이 여기서는 앉으나 서나 민족 생각인 장지락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알아봐야 할 지점이겠지만, 흥미로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