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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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종강

zeno 2009. 5. 26. 18:59
  1. 꽤나 길었던 학기가 결국 끝났다. 1월 20일에 시작해 5월 20일에 끝났으니 딱 4달이다. 중간에 봄방학이 1주 있었지만, 그래도 4달은 역시나 길었다. 본래 거주하고 있는 기숙사가 오늘 부로 퇴거해야 하는 곳이라 그저께 이사를 했다. 그래봤자 한 층 아래 다른 사람의 방으로 짐을 옮긴 것에 불과하다. 이 방 주인은 지난 19일에 한국에 갔고, 7월 초에 돌아오기에 그간 방을 쓰기로 했다. 본래 돈을 좀 받을 듯 했는데, 운이 좋게도 무료로 방을 내주었다. 만세! 예전에 쓰던 방보다 조용하다. (복도 하나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기숙사 뒤에서 하는 공사 소리가 훨씬 덜 들리고, 햇빛도 약간 들어온다.) 아직 돌아갈 짐을 싸는 건 이르기에 대충 짐만 옮겨놨는데, 이 기숙사에서 오늘부로 모든 사람들이 나가야 하다보니 짐 맡길 곳이 없다 그러기에 (그리고 얼떨결에) 세 명의 짐을 추가로 맡아주다 보니 방이 짐가방들로 가득하다. 방 출입만 가능한 정글이 되었달까.

  2. 지난 이틀 - 이 글을 쓰다 노무현에 대한 소식을 들어서 그간 글을 마치지 못했다. - 간은 그야말로 백수의 생활이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평소엔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에서 한국 드라마나 쇼프로를 찾아보고, 간간이 사람들이랑 놀고. 거기에다가 약간의 독서와 약간의 블로깅 정도. 학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하려고 생각했던 게 꽤 많은데 - 예를 들면, 책을 읽는다던가, 여행 계획을 짠다던가, 독서 리뷰를 쓴다던가, 번역을 좀 한다던가, 버클리에서 가보지 못한 곳들을 간다던가 등 - 앞의 것들은 영 내키지 않아서, 뒤에 건 돈이 든다는 생각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아서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고 있긴 한데, 무언가 잘못 선택한 건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팔자 좋은 시간이 이제 다시 안 올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러려고 노력할테고.

  3. 사실 마음만 먹자면 돈 좀 써가면서 놀러 다닐수도 있다. 하지만 그 행동을 막는 건 돈보다 사람들이다.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사람들과 많이 놀긴 했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매사에 '다름'이 느껴지고, 그로부터 내게 취해질 그/녀들의 행동과 말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기가 싫다고나 할까. 그래서 혼자 처박히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점은 극히 일상적이다. 예를 들어, 어제 종강잔치랍시고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셨는데, 이내 곧 게임에 들어가더라. 본래 술 마시면서 게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자리를 피한 탓도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자 자연스레 형성되는 여남차별과 이성애중심주의의 분위기가 싫었다. 문제는 여성들 스스로도 그 분위기에 익숙하기에 이를 조장한다는 것. 이를 일일이 지적하고 흥겨운 분위기를 깨기도 뭣해서 자리를 피했다. 예를 들자면,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관계 없이) '러브샷'이 게임의 벌칙으로 주어지고 - 이것은 몇 명 안 되는 소녀들의 구호로 시작되었다! - 세칭 '의리게임'을 하면서 당연히 (술 마실) 남자를 먼저 뽑고, (술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여자는 나중에 뽑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타자화(라고 쓰고 2등인간화라고 읽는다)되는 여성들도 자신들이 술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는 내가 엠티나 새터를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 분위기를 깨는 것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1대 나머지로 싸우려고 드는 행위다. 그래서 대체로 피한다. 이런 식으로 남들은 그냥 넘어가는 부분에서부터 불편함을 느끼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즐거우면서도 내심 계속 불편한.

  4. 역시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한번 끊긴 글의 흐름은 다시 잇기가 어렵다. 다른 이야기들은 다른 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