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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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행복이란 무엇인가 / 김규항

zeno 2009. 2. 6. 19:32
어떤 이가 그러더란다. "김규항 씨의 교육관은 존중해요. 하지만 아빠 때문에 아이가 희생되어선 안 되잖아요?" 올해 중3이 되는 내 딸이 학원 같은 데 하나도 안 다니는 걸 두고 한 이야기였다. '희생이라...' 이야기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땐 씩 웃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내내 걸렸다. 그가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지난 해 여름 내내 촛불집회에 개근한 사람이며, 이명박이라면 아주 이를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걸 아이를 희생시키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아이가 학원을 안 다니면 경쟁에서 뒤쳐질 것이고 경쟁에서 뒤쳐지면 결국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명박 이름만 나와도 이를 가는, 자신이 세계관과 철학과 신앙에서 이명박과 정반대라 자부한다는 그는 이명박 씨와 적어도 한 가지는 같아 보였다. 바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행복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 우연히 본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참 오랜만에 그 정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제주도의 해녀할머니들을 그린 다큐멘터리였다. 평생 물질로 살아 온 여든 된 해녀할머니에게 물었다. "스킨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더 많은 수확을 하실 텐데요?" "그걸로 하면 한 사람이 100명 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안 하세요?" "그렇게 하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인류가 생긴 이래,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존재해왔다. 남보다 많이 갖는 게 남보다 앞서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런 걸 오히려 불편해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눈에 밟혀 더디더라도 함께 가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 앞의 것은 한줌의 지배계급에게, 뒤의 것은 대다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온 생각이다. 인류 역사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의 대립이기도 했다.
인류가 그나마 여태껏 사람 사는 세상의 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어떤 흉악한 세상에서도, 어떤 악랄하고 탐욕스럽고 막되어먹은 놈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에도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유지되어왔기 때문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것, 아무리 많이 가지고 아무리 앞서도,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염려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와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것을 사회 성원의 대다수가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수천 수만년 동안 유지되어 온 생각이 오늘 사라지고 있다. 경쟁력이 행복을 가져온다는, 남보다 많이 가질수록 남보다 앞설수록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한줌의 지배계급의 생각이 아니다. 대다수 노동자의 생각이며 대다수 농민의 생각이며 대다수 서민들의 생각이다. 불거지는 사회문제에선, 이를테면 언론노조 파업이나 철거민 살해 사건 따위에선 짐짓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오늘 한국 성인들의 사회적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아이들 교육문제에선 여지없이 정직하게 드러난다.
오늘 많은 사람들, 민주적이고 개혁적이며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명박이 우리를 불행에 빠트리고 있다!" 백번 맞는 말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명박 씨가 우리를 불행에 빠트리기 전에 이미 우리 스스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천 수만년 동안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온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