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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제2권 요약 본문

ㄴ 플라톤, <국가>

플라톤 『국가』 제2권 요약

zeno 2008. 7. 24. 15:39
  플라톤의 『국가』 제2권의 논의는 글라우콘이 트라시마코스의 논지를 승계하면서 시작된다. “선생님께서는 올바르지 못한 것보다는 올바른 것이 모든 면에서 더 낫다는 것을 저희한테 설득하신 듯이 ‘보이기’(생각되기: dokein)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설득하시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357b) 라며 도전적으로 나오는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좋은 것(agathon)’이 “결과를 바라서가 아니라 오직 그 자체 때문에 반기며 갖고자 하는 그런 것” · “그 자체 때문에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생기는 결과들 때문에도 좋아하는 그런 것” · “수고롭기는 하지만, 우리를 이롭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하거니와, 우리가 이것들을 수용하려 하는 것도 그것들 자체 때문이 아니라, 보수라든가 그 밖에 그것들에서 생기는 결과 때문”인 것 (357b - 357d) 중 어느 것에 속하는가를 묻는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것은 글라우콘이 제시한 정의들 중 두 번째 것에 속한다고 대답한다. 이에 대해 글라우콘은 다중은 그보다는 수고로운 것이라 생각한다며 세 번째 정의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올바르지 못한 자의 삶이 올바른 자의 삶보다도 훨씬 낫다고들 말” (358c) 하는 것이다.
  이어서 글라우콘은 사람들이 “본디는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 좋은(agathon) 것이요, 올바르지 못한 짓을 당하는 것은 나쁜(kakon) 것이지만, 그걸 당함으로써 입는 나쁨이 그걸 저지름으로써 얻는 좋음보다도 월등하게 커서, 결국 사람들이 서로들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고 또 당하기도 하며, 그 양쪽 다를 겪어 보게 되었을 때, 한쪽은 피하되 다른 한쪽을 취하기가 불가능한 사람들로서는 서로간에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거나 당하지 않도록 약정을 하는 것이 이익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358e) ‘법률(nomoi)’와 ‘약정(계약: syntheke)’을 제정하게 되었으며, 이 “법(nomos)에 의한 지시를 합법적(nomimon)이며 올바르다(dikaion)고 한다”고 (359a)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름과 그 기원에 대해 말한다. 다시 말해, “그건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최선의 경우와 그걸 당하고도 그 보복을 할 수 없는 최악의 경우, 이 두 경우의 중간에 있는 것”이며 “올바른 것이 이들 양쪽 것 사이에 있는 것이면서도 만족스런 것으로 대접받는 것은 결코 좋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를 수 없는 허약함 때문에 존중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359a)
  이 연장선상에서 글라우콘은 “올바른 사람도 그 탐욕(제 몫 이상을 차지하려는 마음: pleonexia)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사람과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현행 중에 포착” 하게 되며 “모든 천성이 좋은 것으로서 본디 좇게 마련인 방향이지만, 법에 의해서 강제로 평등에 대한 존중 쪽으로 천성이 유도”된다 주장한다. (359c) 그래서 그는 이런 현상이 “올바름이 개인적으로는 좋은 것이 못되기에, 아무도 자발적으로 올바르려고는 하지 않고 부득이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데 대한 강력한 증거”이며 “어느 쪽이고 자신이 올바르지 못한 짓을 능히 저지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경우에는,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를” 거라는 의심을 재확인한다. (360c) 즉, 트라시마코스의 논지를 그대로 이어받은 글라우콘의 생각은 “최상급의 올바르지 못함(不義)은 실제로는 올바르지 않으면서 올바른 듯이 ‘보이는’ 것”이라는 (361a) 문장으로 압축된다.
  같은 논리에 따라 “올바른 사람”은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기’(생각되기: dokein)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훌륭한 사람‘이기’(einai)를 바라는 사람”이며 (361b) “올바르지 못한 짓이라곤 전혀 저지르지 않았지만, 올바르지 못함의 최대 악명을 얻도록 해서, 그가 악명과 그리고 이 악명으로 말미암은 결과들로 인하여 유약해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올바름과 관련된 시험을 받도록 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361c)
  이 논의에 아데이만토스가 동생 글라우콘의 편을 들며 끼어든다. 그는 아버지를 비롯한 조언자들의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고들은 사실 “올바름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해서 생기는 명성을 찬양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363a) 이어서 그는 시인들도 “올바른 것들보다는 올바르지 못한 것들이 더 이득이 된다”고 읊으며 (364a) “신들조차도 실은 많은 선량한 사람에겐 불운과 불행한 삶을 배정하면서, 이들과 반대되는 사람들에겐 그 반대의 운명을 내린다”고 말한다. (364b) 이어서 그는 지금까지 올바름을 찬양하고 올바르지 못함을 비난한 이들 중 그 누구도 정의와 불의의 결과물만을 놓고 의견을 개진할 뿐 그 자체가 왜 옳고 그른지를 주장하지 않았다면서 소크라테스에게 “다만 올바름이 올바르지 못함보다도 낫다는 주장만 밝히실 것이 아니라, 이들 각각이 그걸 지니고 있는 당사자에게 그 자체로 무슨 작용을 하기에, 한쪽은 나쁜 것이지만, 다른 한쪽은 좋은 것인지를 밝혀” 주기를 요구한다. (367b)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올바른 상태, 정의: dikaiosyne)엔 한 사람의 것도 있지만, 나라(polis) 전체의 것도 있다”며 올바름의 정의를 개인보다 큰 규모인 나라에서 찾은 뒤 개인의 범위로 좁혀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의 논의는 기존에 있는 나라를 다루는 대신 올바름을 구현한 가상의 나라를 기원(arche)에서부터 설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합의하기로는 개인들이 ‘공동 생활체’(synoikia) 혹은 ‘나라’(도시 국가: polis)를 형성하는 까닭은 의식주를 비롯한 각기 서로 다른 ‘필요’(chreia)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들은 논의의 명료화를 위해 ‘최소 한도의 나라’(최소 필요국: he anankaiotate polis)를 세우고자 한다. 이 나라에서 “각각의 것이 더 많이, 더 훌륭하게, 그리고 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성향에 따라’ (kata physin) 적기에 하되,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한가로이” 대하기 때문이다. (370c) 이 같은 나라는 점차 나라의 틀을 갖추기 위해 단순한 생산자가 아닌 상인, 임금 노동자 등의 계급을 포함하게 되고, 제도도 시장이나 극장 등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 나아가 국가는 다른 국가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하게 되고, 이를 위해 ‘수호자들(phylakes)’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키게 된다.
  소크라테스에 의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를 맡고 있다고 추켜세워진 수호자들은 집을 수호하는 개처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격정적인 것에 더하여 기질상으로 지혜를 사랑하게 되어야만” 하는 존재들이 된다. (376e) 이들은 또한 소크라테스에 의해 “앎과 모름에 의해서 친근한 것과 낯선 것을 구별할진대, 어찌 배움을 좋아하지(philomathes) 않을 수가 있겠”냐며 (376b) 배움을 좋아하기에 지혜 역시 사랑하는 존재들이 된다.
  한편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은 몸을 위한 체육(gymnastike)과 혼을 위한 시가(詩歌: mousike)로 나뉘게 된다. 그 중 시가는 이야기를 포함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야기가 무엇보다도 허구로부터 시작된다며 이를 만들어내는 시인들에 대해 논한다. 시인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관점은 다음 한 문장으로 잘 드러난다. “우리로선 무엇보다도 먼저 설화 작가들을 감독해야만 하겠거니와, 그들이 짓는 것이 훌륭한 것이면 받아들이되, 그렇지 못한 것이면 거절해야만 될 것 같으이.” (377c) 그는 수호자 계급이 “처음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훌륭함(덕: arete)과 관련해서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하게 지은 것들을 듣도록” 해야 한다며 (378e) “나라의 수립자들로서는 시인들이 거기에 맞추어 설화를 지어야만 하는 규범(typos)들을 아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379a)
  다음 논의는 신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소크라테스는 신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게 선한 존재이며 “훌륭한 상태에 있는 것들의 원인” (379b) 이고, 시인들이 이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신이 나쁜 것을 일으킬 리도 없으며 나쁜 쪽으로 바뀔 리도 없으므로 신은 항상 위대하고 선한 존재로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시인들의 시가가 규제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제2권이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