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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보수적인 20년대, 혁명적인 30년대 본문

ㄴ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제2장 보수적인 20년대, 혁명적인 30년대

zeno 2009. 9. 16. 13:25

20세기 초반의 세계 경제 해체와 1930년대에 이루어진 문명의 거대한 전환을 잇는 연결고리인 국제 금본위제의 붕괴는 단순한 경제 제도의 몰락이 아니었다. 이는 단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잘못된 믿음에 불과했다.
  사실 1930년대에 일어났던 사회적 전환에 선행한 1차대전 이후의 전세계적 혼란은 신세기적 변화라는 당시의 믿음과 달리 19세기 문명의 붕괴를 종결짓는 것이었다. 1900년 이래의 세계 경제의 붕괴는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고, 이것이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게다가 전후처리를 위해 도입됐던 베르사유 조약은 패전국들의 일방적 무장 해제를 강요하며 세력균형 원리의 복구를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런 현실에서 국제연맹의 존재는 유명무실했다. 한편, 국제연맹은 국제 통화 체제의 복구를 통한 각국 통화 환율과 자유무역의 안정을 추구하며 평화 수호를 위한 경제의 재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J. P. 모건은 나탄 로스차일드를 대신하는 오트 피낭스의 대표자로 급부상했다.
  1920년대는 19세기의 기준에서 보면 혁명적이었을지 몰라도, 실상은 1914년 이전의 체제로 회귀하고자 하는 반동적 시기에 불과했다. (이는 19세기 유럽의 체제를 1차대전 이후에 도입한 러시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의 유럽 국가들은 각국 통화의 안정화를 통한 과거형 국제 경제 체제로의 회귀만을 추구하다가 통화 불안정을 전세계적으로 전염시키며 도리어 체제 전체를 붕괴시켰다. 각국의 통화 불안정은 각 국민들에게 통화 가치의 현대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국제 경제 체제 내 각국 통화 간의 상호 의존성을 일깨웠다.
  한편 금본위제에 대한 믿음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를 초월한 국제적 신앙이었다. 게다가 금본위제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약소국들에서는 자국 통화 가치의 상승을 위한 긴축 정책의 부작용을, 강대국들에서는 억지로 유지한 통화 가치로 인해 타국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등 큰 경제적 부담을 가져왔다. 결국 미국이 1933년 금본위제를 공식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금본위제로의 전세계적 회귀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각국이 자국 화폐의 대외적 가치를 유지하며 되돌리고자 했던 자유무역은 오히려 그 과정에서 실시된 조치들로 인해 압살되고 말았다. 결국 금본위제의 소멸과 함께 안정된 국제 통화 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형성되었던 제도들은 그런 현실을 위한 제도로 탈바꿈하였다. 이런 경향에 따라 국제연맹과 오트 피낭스는 모두 평화 유지라는 존재 명목을 잃고 급속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후의 거대한 전환을 모두 금본위제의 소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그야말로 지각변동이 벌어졌다. 이 거대한 전환은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국민국가들과 공생적 관계를 맺었던 것처럼, 2차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과 연을 맺었다. 이는 결국 19세기 내내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유토피아를 형성하려던 경제적 자유주의의 무모함으로부터 출발했다. 19세기를 지탱했던 세력균형, 금본위제, 입헌국가라는 제도들은 결국 자기조정시장의 자식들이었다.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제도는 결국 이익이라는 동기에 따라 움직인 최초의 문명인 19세기 문명의 기반을 형성했다. 자기조정시장의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그것이 태어나고 쇠락한 19세기의 영국을 살펴보아야 한다.